임실 관촌면 신전마을의 구 상월초등학교. 도예가 이병로씨(36)가 '도화지(陶花地)'를 연 뒤 이미 폐교가 돼 시간도 멈춰버린 이 곳에도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도자기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마루바닥에는 물레질 소리가 낮게 깔리고, 빚어낸 도자기들이 흙냄새를 뿜어내며 단단히 여물어가는 곳. 새하얀 눈꽃이 여기저기 핀 날, 도자기가 피어나는 땅 '도화지'를 찾았다.
지난해는 그에게 무척 바쁜 한 해였다. 늦깎이 장가도 가고, 지난해 5월 도예문화원 '도화지'도 열었다. '도화지'는 그의 아내가 붙여준 이름. 주로 꽃을 소재로 작업해 온 그의 작품과 아이들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무한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화지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작업 하기 위해 교육을 하는 것이지만, 교육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과 대중들의 거리가 너무 멀면 괴리감이 생겨요. 사람들은 작품을 이해할 수 없고, 작가들은 결국 혼자 작업하게 되는 거죠.”
예술인과 일반인들 모두를 위한 도예교육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도화지'도 작업실 겸 도예체험·교육공간으로 꾸몄다.
그의 작업에는 유난히 꽃이 많다. 수작업으로 꽃잎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어가기가 무척 까다롭지만 그는 "꽃이라는 말도 예쁘고, 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하고싶다”고 말했다. 2002년 전국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색과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소재로 했고, 장미꽃으로 장식한 '백화백화(白花百火)'는 지난해 전북산업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상복 많다'고 할때면 그는 "제 몸에 수(水) 기운이 많다던데 그래서 흙을 만져야 좋은가 보다”고 조용히 웃어넘기지만 사실 도예가의 길도, '상복'도 그에게는 뒤늦게서야 찾아온 것들이다. '환쟁이는 안된다'는 집안의 반대로 한동안 디자인 쪽을 기웃거리기도 했던 그가 선택한 도예는 스물일곱 원광대에 입학하면서 찾은 길.
"부여에 찾아가 백제 토기를 배우고 경주에서 가야토기를 배우는데, 순간 옛날 토기 제작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더군요. 옛 것을 단순히 전승하는 것이라면 학교 교육이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적 이미지와 멋을 찾아내는 것. 그는 옛 것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뿌린만큼 거두는 농사처럼 통풍, 건조 등 신경 쓰는 만큼 나오게 되죠.”
도자기가 구워져 완성되기까지 단 한번도 작품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도 태어나고 저렇게도 태어나고, 내 새끼 같은 마음에서”라고 말했다.
현대 생활에서 이제는 별로 쓰임이 없어졌지만, 6년전부터 그는 '등잔'을 주목하고 있다. 아버지 죽음과 함께 고인돌 모양의 등잔을 만들었던 것이 시작이 됐다. 조형작품으로서의 등잔, 현대적인 조형물 안에서의 등잔을 보여줄 생각이다.
'도화지'라는 예쁜 이름을 생각해낸 그의 아내는 전주공예품전시관의 임진아씨다. "비슷한 일을 하다보니 서로 큰 힘이 많이 된다”는 이씨는 올해를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베푸는 해로 삼았다. '도화지'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컵이나 밥그릇도 열심히 만들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미뤄왔던 첫 개인전을 열고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생각이다.
"바다 깊은 속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도자기를 보면 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는 그는 뜨거운 열정으로 끊임없이 작업하고 싶단다. 높은 온도 속에서 구워낼 수록 더욱 단단해 지는 도자기와 같은 '쉬지않고 열심히 하는 작가'가 도예가로서 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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