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암 나철(羅喆). 그의 이름은 낯설다. 구한말의 사상가이자, 고려말 단절됐던 단군교의 맥을 살려낸 대종교의 창시자였고, 민족정신을 타오르게 한 독립투쟁의 대부. 역사속 빛나는 인물이면서도 철저하게 묻혀있던 나철은 왜 지금, 우리 앞에 서는가.
"그의 존재는 과거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홍암이 꿈꾸었던 신시는 우리 한민족이 가야할 이상향, 오늘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쉬며 타올라야 할 궁극적인 지점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병천(48)이 이 이름 낯선 역사속 인물 '나철'의 일대기를 담은 장편소설 '神市의 꿈'(한문화 펴냄)을 내놓았다. 상고사에 주목한지 7년여, '나철'을 만난지 2년여만의 결실이다.
상고사의 기록으로 드러난 신시(神市)는 제천 의식이 이루어지는 신성한 공간,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이어지는 장소다. 소설은 신시라는 이상향을 배경으로 대종교를 창시한 독립운동가 '홍암 나철'의 일대기를 그렸다.
소설의 배경은 조선말. 부패한 정치로 민란이 끊기지 않고 신문물은 넘쳐났으며 일제의 역사 왜곡에 의해 민족의 자취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그 시대다. 소설은 시대적 상황에 맞서 민족 정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단군의 나라, 신시를 되찾는 일에 앞장섰던 나철과 조선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을 추적하면서 상고사의 실체를 조명해낸다.
"상고사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은 처음부터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멸실되거나 거세된 역사였지요. 소설이 비록 허구라해도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이 빛나는 역사와 인물이 독자들의 가슴에 살아 숨쉴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용기를 내게 했습니다."
작가는 2년전, 출판사의 의뢰로 '나철'을 만났다. 역사소설, 그것도 한 인물의 생애를 다루는 작업에 별 마음 두지 않았었다는 그가 선뜻 응했다는 사실은 의외다. 허구로 세상을 그려내는 소설가에게 역사속 인물은 운명적 만남이 아니고는 인연 닿기 어렵지 않을까.
1863년 나주에서 태어나 1916년 스스로 호흡을 멈추는 폐식법으로 순절한 나철의 생애. 그의 궤적은 참으로 도도하여서 그 걸출한 생애와 사상을 소설이라는 그릇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작가는 내내 고민스러웠다. 그의 고민은 뜻밖에도 나철이 활동했던 중국 만주일대의 답사 길, 백두산이 감추고 있는 지하삼림에서 풀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백두산의 소나무와 박달나무 거목들,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펼쳐지던 또다른 지하의 숲, 그곳에 마냥 아득할 정도로 '거창하고도 웅혼한' 나철의 일생이 있었다.
집필을 시작해 완성하기까지 글쓰기는 꼬박 6개월. 작년 1월과 2월, 유난히 눈 많이 오고, 매서운 추위가 엄습했을때 그는 무주 안국사에 칩거해있었다. 구들목은 쩔쩔 끓지만 머릿맡에 놓아둔 자리끼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던 겨울, 4박 5일 내내 눈이 내리고 또 내려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던 그 절집 방안에서 그는 만주의 혹한을 그렸다. 2개월 일상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소설 쓰기를 위해 칩거한 것은 5월과 6월. '신시의 꿈'은 모악산 월명암에서 완성되었다.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명 직전 담겨진 나철의 사진 한장은 소설을 집필하는 내내 그와 함께 지냈다.
"선생은 꿈에 자주 나타났어요.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형형한 눈빛으로 말걸어오는 선생은 언제나 가슴 뜨겁게 했어요."
그의 소설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작가가 오랜동안 섭렵한 상고사의 감추어진 비밀, 소설속 허구의 인물인 어진과 무녀 송이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작가가 역사소설에 선입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배려해 놓은 장치다.
"자기생애에서 신시를 다시 열고자 했던 나철이 정작 그날에 대해 예언하지 않았으니 도무지 헤아릴 길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홍익이화의 세계는 그냥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우리 스스로 불러와야하는 것 아닐까요.”
장고 끝에 완성한 '신시의 꿈'을 반기는 그의 오랜 지기들은 즐거운 일을 벌였다. 6일 오후 5시 전주한옥체험관에서 벌이는 출판기념회.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의 신명난 그 잔치판에서 혹시 '신시'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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