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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바보 감독 김동원의 '송환'

 

~대부분의 영화제가 꽃피는 4월을 넘겨 시작하는 이유는 날씨말고도 관의 예산지원과 무관하지 않다. 벚꽃도 피기 전에, 공무원들이 예산계획을 잡기도 전에 치러진 제 4회 전주 시민 영화제의 성공은 자원활동가의 희생도 희생이지만 개막작 '송환'에 힘입은 바 크다. 차비만 받고 빌려준 이 필름은 입소문을 듣고 달려온 관객 덕에 만원을 이루어서 극장은 계단 통로 어디에도 빈틈이 없었다.

 

모두 긴장했다. 어!, 걸러지지 못한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는 인터뷰를 방해했고 안정되지 못한 앵글은 노인의 얼굴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소한 불편들은 묘하게도 친근한 감정선을 자아냈고,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 낮은 목소리에 관객들은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희로의 격렬함이 아닌 밑으로부터 터지는 울음이었다. 강요된 전향공작 앞에 자존심을 지키지 못해 영화 속 전사 아닌 노인들이 울 때만 해도 내 탓은 아니라며 눈물을 참던 이도 끝내는 90노모의 눈물 앞에 울 수밖에 없었다. 화양연화의 시절을 감옥에서 다 보내고 45년 만에 출소한 아들에게, "그러니 엄마 말을 들었어야지”하며 함함한 고슴도치를 나무랄 때, 강철의 심장을 가진 줄만 알았던 김선명은 운다. 그래, 비극이 감정을 정화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글 쓰는 이에겐 원고지가 감옥이듯 감독에겐 카메라 감옥이란 걸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 작년 여름과 가을, 학생들과 문화유산 다큐를 만든다고 보낸 시간들을 기억해 본다. 카메라를 빌려놓았는데 주말이면 10주 째 비가 내리는 것이 2003년의 날씨였다. 촬영을 마치고 편집 그리고 재촬영을 하고 나니 문제가 많았다. 말없는 들판은 색깔이 달랐다. 우리나라 가을의 소슬한 바람은 들판을 시시각각으로 바꾸지 않던가. 그런데 12년이라니. -이 물리적 시간은 정치적 부침 못지 않게 카메라 발전이 축약된 시기다- 금기의 대상에 보낸 800시간의 그걸 2시간 반으로 줄이다니. 지독하다, 김동원.

 

그는 '거울'과 '무기' 중에서 우리를 비추는 쪽을 택했다. 그는 지속적인 관찰과 성찰을 통해 화면 속의 인물들이 기네스북에나 오르는 특별히 의지가 굳은 타자 아닌 태어난 곳에 머리를 고향에 두려는 순박한 할아버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통일의 당위성보다는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연민이 더 크다면 다큐가 갖는 선동적이며 교육적인 목적에 실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구초심(首邱初心)이 상식이라면, 그들을 가두고서 우리도 그들도 자유롭지 않았다면, '남은' 이 노인들을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 1차 '송환'을 하고서 훨씬 자유롭지 않았던가. 전주 근교 배농장에서 일하던 순박한 얼굴의 김영식 노인을 비롯한 이 할아버지들은 과연 '명백한 범죄의 가능성'이 풍부한가. 안다. 우리가 여는 만큼 저쪽이 열지 않는다는 것, 납북자 문제 역시 복잡다단하는 것을. 그래도 '송환'하자. 정말 이 양반들 누가 보증 못서 주나?

 

전주에도 멀티플렉스 바람이 거세지만 세계 다큐 영화의 교과서가 될 이 영화를 거는 극장은 없다. 바보들이다. 하여, 전주독협에서는 무주지역부터 소공간 영화상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 바보 감독 김동원은 부안이든 고창이든 열 분만이라도 모여서 함께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면 테이프를 보내드린단다. 연락처는 검색창에서 '송환' 혹은 '전주 독립영화협회'를 치면 알 수 있다.

 

1958년 나주에서 출생, 원광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학생들과 영화를 만든다. 『문화저널』에 3년째 영화보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전북작가회의 회원이다.

 

/신귀백(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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