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리 아무도 모르게
여름 가고 가을이 유리창에 물들고
가을날에 사랑이 눈물에 어리네
내 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리 아무도 모르게
/故 하중희 작사 '조약돌' 중에서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한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 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가수 남일해씨가 매력적인 저음으로 들려준 '빨간 구두 아가씨'는 작곡가 김인배씨의 낭만적인 멜로디와 어울려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 노래의 매력은 1962년 발표 당시의 어두운 시대상황에서 빨간색의 밝은 이미지를 무뚝뚝한 아가씨의 발걸음과 함께 떠올리게 한 가사에서 먼저 비롯된다. 실제로 명동거리를 보는 듯, 상상에 젖게 했던 이 노래는 1960년대 초반 젊은이의 패션 리듬을 주도했다고 한다.
지난 18일 세상을 등진 '빨간 구두 아가씨'의 작사가 하중희씨.
전주출신인 그는 1957년 전북대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 해 전주상업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음악에 미련을 놓을 수 없었던 그는 26살 청년이었던 1959년, 월간 '음악문사'와 인연을 맺으며 상경, 2년 뒤 서울중앙방송극 음악담당자로 입사했다.
그는 워낙 많은 히트 곡을 냈다. 그중에서도 남일해·이미자·배호·김상희 등의 목소리를 빌어 세상에 낸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조약돌' '그리운 얼굴' '기러기 아빠' '내 이름은 소녀' '꽃 이야기' 등은 60·70년대 그의 대표적인 히트가요로 꼽힌다. 특히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진 산골에 엄마 구름 애기 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로 시작되는 '기러기 아빠'(노래 이미자)는 최근 자녀의 교육 등을 위해 아이와 아내를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지로 보낸 '기러기 아빠'들이 늘어나면서 다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대중성뿐 아니라 1964년 제1회 국제신문 가요대상(작사부문)과 1965년 제1회 동양방송 가요대상(작사부문), 1968년 대한민국 무궁화대상(작사부문) 등을 수상하며 실력도 함께 인정받았다.
'어젯밤 꿈 속에 나는 나는 날개 달고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올라 갔어요'로 시작하는 동요 '아빠의 얼굴'의 노랫말도 그의 작품. 어린이를 위한 노래 만들기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던 고인은 듣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는 서정적인 곡인 '비둘기 집' '산마을' 등을 발표했다. 교과서에 실렸거나 현재 실려 있는 곡도 상당하다. 영문학도 출신답게 '철새는 날아가고' 등 다수의 외국 곡을 번안, 소개한 1세대 번안세대이기도 하기도 했다.
순수하고 정감 어린 소재로 고향의 풍경과 가족의 소중함을 노래한 고인은 작곡작업뿐 아니라 '의리의 사나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가요계의 경조사와 작곡자의 권위를 세우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저작권협회가 관의 특별감사에 걸려 애를 먹었던 시절, 혼자서 협회사무실을 지켜 무너질 뻔했던 저작권협회를 회생시켰던 것과 입원비와 장례비가 없는 동료 예술인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 장례를 치른 일 등은 그의 대표적인 일화다.
전주와의 인연은 1972년 단오날에 맞춰 작사한 '전주찬가'로 한층 더 깊어졌다. '완산칠봉 넘어오는 봄 아가씨는 개나리 저고리에 진달래 치마'로 시작되는 노래다. 풍남문과 오목대, 덕진연못과 전주부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래부르기중앙회, KBS가요심의위원, 공연윤리위원회 전문심의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와 가요작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4년 서울문화대상을 수상했다.
대중 속에서 숨쉬는 가요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해 온 고인은 199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10여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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