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상권(17,7-16)을 보면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근이 극심하여 외아들과 함께 사는 가난한 과부는 뒤주에 있는 밀가루 한 줌과 병에 남아있는 기름 몇 방울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빵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땔감을 줍고 있었다. 그때에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가 나타났다. 엘리야는 먼저 그 여인에게 물을 청하고, 이어서 먹을 것을 청한다. 여인이 자신의 처절한 상황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염치 좋게도 그녀가 빵을 만들면 먼저 자신에게 한 조각을 가져오고, 그 후에 남은 것을 아들과 함께 먹으라고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엘리야의 요구는 철면피한 요구이다. 세상에 가난한 과부가 자식과 함께 먹으려는 마지막 것을 빼앗아 먹으려는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여인은 엘리야의 말을 듣고 즉시 집에 들어가 엘리야가 말한 대로 하였다. 그녀는 비록 이방인이었고 엘리야를 처음 보았지만, 오랜 여행으로 인하여 피로에 지치고 먹지 못해 죽을 것처럼 보이는 불쌍한 이방인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모자간에 먹기에도 부족한 빵을 만들어 먼저 그에게 바쳤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까지도 자기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불쌍한 사람에게 먼저 주었다. 그랬더니 그 과부의 뒤주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임을 잘 알고 있지만, 삶을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며,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가진 것을 내어놓기를 어려워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전혀 필요 없는 짐까지도 포기하기를 어려워한다. 때문에 나에게 필요한 것, 지금 내가 꼭 필요한 것을 내어준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더욱이 그것이 내가 가진 마지막 것이며,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마지막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성서의 과부 이야기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까지도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희생으로 내어놓았을 때, 오히려 자신이 더 풍요로워졌음을 말하고 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풍요로운 마음이 그녀를 육신적으로도 풍요롭게 했음을 보여준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고 나의 육신까지도 풍요롭게 한다. 오늘 우리 모두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경규봉(천주교 전주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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