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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월드컵과 우리 동네 - 김정수

김정수(극작가)

월드컵이 먼 나라 이야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출전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전하지 못했던 때, 월드컵은 하나의 신화였다. 펠레의 공차는 모습을 본적 없는 아이들도 펠레를 알았고, 그들에 의해 펠레는 살아있는 전설이 될 수 있었다. 현대의 월드컵은 국가적 전쟁 영웅이 범법자로 지탄받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영웅이 필요한가 보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의 최대 성과는 무엇보다 우리 국호의 완전한 사용이었다. 그동안 각종 매체가 ‘한국’으로 즐겨 써왔던 우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확실히 정착시킨 계기가 2002월드컵이었으며, 붉은악마가 숨은 공로자였다. 월드컵 개최 경험은 올해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세계축구팬들에게 새로운 응원 모델을 제시했다는 거리응원도 2002년의 유산이다. 도시마다 간선도로를 응원을 위한 공간으로 내놓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으며, 응원을 어디에서 누구와 할 것인가가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티 브이가 없던 시절, 밤 시간은 참 길었다. 해 질녘까지 함께 놀았던 동네 아이들은 저녁밥을 챙겨먹고 난 후 다시 모였다. 어둠 속 숨바꼭질이 본격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청년티 나는 아이들부터 세살박이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어둠 속에 은밀한 스릴은 짜릿했다. 가끔은 동네 어른들 모인 자리에서 재롱잔치도 벌어졌다. 일종의 소규모 학예발표회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배운 노래와 유행가 몇 가지지만 치마나 보자기를 활용한 소품과 의상이 있는 꽁트도 있었다. 그렇게 동네의 밤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주 월드컵 토고전이 벌어진 날,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임대하여 단체 응원을 준비했다. 누가 얼마나 나올까 하고 시큰둥하게 생각했고, 반응 또한 영 시원찮아 보였다. 그런데 경기 시작 무렵, 밖에 나가본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파트, 이웃 아파트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이들이 줄고 있다는 뉴스 때문이 아니라 실제 내 눈으로 아이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아이들은 재난과 박해를 피해 지하동굴에 숨은 은둔자들처럼 내 눈 밖에 벗어나 있다가 해방의 날, 어둠과 함께 하나 둘 나타난 것이다. 학교수업에 학원 수강, 야간타율학습, 성적관리, 건강관리까지 강요당하느라 숨쉴 틈이 없었던 그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꼬마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오밀조밀 붉은 옷을 입고 모여앉아 기특하게도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고 있었다. 참 안쓰러운 감동이었다.

 

이들에게 어쩌면 월드컵이 모처럼 맛보는 공인된 해방구였는지 모른다. 단 하루만이라도 부모의 눈총과 선생님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기쁨을 누렸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외침과 탄성을 들으며 참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죄를 많이 짓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국가주의, 상업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월드컵이 그래도 우리 동네에 기여하는 바가 최소한 하나는 있구나 싶었다.

 

/김정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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