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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엄살과 투정의 시대 - 안도현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며칠 전 출근길에 모처럼 연탄을 싣고 가는 트럭을 보았다. 반가웠다. 연탄 실은 트럭이 마치 흑백사진 같았다. '연탄' 하면 줄줄이 떠오르는 기억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까닭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슴이 찡했다. 아직도 연탄으로 차가운 계절을 나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직도 연탄으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물을 데우며 겨울을 나야 하는 가구가 20만이다. 북녘에서는 겨울나기 연료로 연탄마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한다. 엄살이 아니다. 나는 '연탄 한 장'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이 가을에 스스로 또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인가?"

 

삼시 세 끼 배곯지 않고 먹고 살만 한 호시절이라는데, 한쪽에서는 영 글러먹은 세상이라고 삿대질로 세월을 다 보내고, 또 한쪽에서는 옛적보다 사는 게 수월찮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다. 도처에 투정과 엄살이 넘쳐나고 있다.

 

경제를 탓하고 정권을 탓하지만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탓하지는 않는다. 이게 문제다. 귀성길에 고속도로가 막히면 길게 늘어선 다른 차들을 탓하지 자신의 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의 하나라는 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파트 시세의 급상승을 어찌 정부의 정책 부재 탓으로만 돌리는가? 자신의 세속적 욕망이 분명히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입으로 밥 들어가는 일도 투정 아니면 엄살이다. 잘 생각해보자.

 

더 맛난 것을 혀끝으로 찾으려는 욕망과 더 몸에 좋은 것을 섭취하려는 욕망의 부추김에 길들여지면서 우리는 점점 속물이 되어온 건 아닌지? 먹는 일은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도시에서 먹는 일에 한사코 목을 매달고 살지는 않았는지? 남보다 더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먹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온 것은 아닌지?

 

요즈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정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거머쥐지 못한 데서 나온 말이다. 다가오는 대선에 이겨 그 한을 풀겠다는 뜻이다. 엄살의 극치다. 이건 선술집 같은 데서 울분을 참지 못해 술상을 내리치며 내뱉어야 할 소리다. 이런 신파조의 엄살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가 없다.

 

그들은 10년 동안 권력을 잃었을지 몰라도 우리 국민들은 이 기간에 참으로 소중한 민주주의를 얻었다. 비로소 성취한 민주주의를 향후에 어떻게 잘 가꾸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데서 길을 찾아야 한다.

 

타령은 안 된다. 다시는 '겨울공화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바로 따뜻함이다.

 

참여정부의 실패와 무능에 대한 지적도 엄살과 투정으로는 곤란하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따뜻함에 대한 배려의 실패이다. 객관적인 논리와 투명한 일 처리의 배면에 따뜻함은 전무했다. 여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이른바 경선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따뜻하지 않은데, 누가 그들에게 마음을 주겠는가?

 

곧 추석이 다가온다. 고향은 따뜻한 밥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 누구도 고향에서는 투정과 엄살을 부리지 않았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음식을 나눠먹을 줄 알았고, 반찬을 서로 권할 줄 알았다.

 

명절은 그렇게 더불어 밥 먹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시간이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고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고향에서는 성공했다고 떠벌이며 자랑할 일이 아니며, 실패했다고 기죽어 고개 숙일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난한 밥상 앞에서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이다. 올 가을엔 제발 따뜻한 일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이 칼럼은 전북일보를 비롯 한국지방신문협회 9개 신문사가 공동으로 게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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