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법학전문대학원법(로스쿨법)의 발효에 따라 로스쿨 인가경쟁은 한층 더 긴박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입학 총 정원의 책정에 이어 설립인가 심사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
전국에서 47개나 되는 대학들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나서는 과열현상은 보기에도 딱하다. 저러다가 인가에서 탈락되는 쪽에서 무슨 격한 반응이 나올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법학교육위원회 위원들에게 임명장과 아울러 방석모를 하나씩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부 고위인사에게 농담을 건넨 일도 있다.
로스쿨도 어디까지나 대학원의 일종이다. 그런데도 그처럼 전력투구를 하는 것은 단순한 경쟁심리라고 이해할 수만은 없다. 이 나라의 법조인 양성제도가 올바른 법치주의나 국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 향상에 중요하다는 점을 투철하게 인식해서일까? 아니면 거기서 양성되는 판 검사, 변호사가 대단해서일까?
어쨌든 로스쿨 인가를 못 받는 대학은 위상이 크게 추락하고 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야말로 올인을 하는 양상이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기존의 법과대학(또는 법학과)은 이제 무슨 강등이라도 당하거나 효용이 떨어진 듯이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다.
로스쿨 인가를 받은 대학에는 법과대학 또는 법학과(이하 ‘법대’, 정확히는 ‘법학에 관한 학사학위 과정’)를 둘 수 없고, 로스쿨 없는 대학에만 법대가 남게 된다고 해서 그 위상이 격하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겼다고 해서 의과대학(학부)의 존재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법대는 법대로서의 고유한 존재이유가 있고, 로스쿨의 선행 교육기관으로서 가장 일반적인 과정이 법대이다. 물론 로스쿨법에 의하면, 그 입학자격은 다양한 전공자 흡수를 위해 비법학 전공자에게도 문호를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로스쿨 입시에서 법학(지식)시험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법대의 매력이 반감되는 이유로 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의견도 있다. 학부에서 법학 전공 4년에 로스쿨 3년, 도합 7년 동안 법학 공부를 한 사람과 로스쿨에서 3년만 법학 공부를 한 사람을 비교한다면, 그 중에 누가 변호사시험에 유리할까? 7 대 3으로 법대 졸업생이 우세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로스쿨법에 입학생의 3분의 1 이상을 비법학전공자로 해야 한다는 규정의 의미를 뒤집어 생각하면, 법학전공자가 사실상 입학에 유리하거나 로스쿨 쪽에서 환영을 받을 여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전공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법대 출신의 합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법대의 우세 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본다.
판 검사나 변호사의 배출이 법학교육의 유일한 목적일 수는 없다. 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법대의 일반 대학원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법조 실무교육에 치중하는 로스쿨보다는 법대와 그 대학원에 가야만 한다.
뿐만이 아니다. 법학사의 학력(실력)을 필요로 하는 직역도 얼마든지 있다. 3부의 공무원을 비롯하여, 기업, 학교, 각계 민간단체, 그 밖의 여러 분야에 법대 출신들이 맡기에 알맞은 직종은 부지기수다.
또한 로스쿨의 입시에는 대학 학부의 성적을 반영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학부의 성적이 좋아야 로스쿨 입학에 유리하기 때문에 로스쿨은 법대 교육의 정상화 및 면학분위기에도 일조를 하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로스쿨의 도입은 결코 법대의 위상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법대를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이 없는 대학은 판검사, 변호사를 배출하는 대학 축에 못 끼어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조인 배출에 있어서 로스쿨과 법대의 역할은 직접이냐 간접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직접 배출이 아니면 보람도 못 느끼고 권위도 서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은 참으로 비교육적이고 너무 공리적이다. 역전경주로 말하자면, 골인 지점에 들어오는 최종 주자만을 안중에 두고, 첫 번째나 중간구간을 역주한 선수의 공로는 폄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로스쿨 대신 법대가 있는 대학을 마이너 리그 쯤으로 여기거나, 스스로 그렇게 자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승헌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이 칼럼은 전북일보를 비롯 한국지방신문협회 9개 신문사가 공동으로 게재하는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