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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정상회담 이후의 평양 - 이우영

이우영(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

지난 18일부터 21일부터 평양을 다녀왔다. 대북지원 단체 ‘남북어깨동무’가 평양 영유아들을 위해 마련한 “콩우유 공장” 준공식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가 적지 않았다. 전세기를 타고 불과 1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의 평양 순안 공항의 외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베트남의 국가수반의 방문으로 베트남항공 비행기가 대기 중이었는데, 최신 기종의 베트남 비행기와 초라한 북한 고려 항공의 비행기들이 대비되어 속은 편하지 않았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북한은 전화에 시달리는 베트남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잘 살았는데, 지금의 처지는 비행기 차이만큼 역전되었기 때문이었다.

 

2년 만에 방문한 평양거리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반 자동차를 포함하여 전차,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의 왕래 빈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눈에 띠었다. 교통량의 증가는 시민의 유동성 증가를 의미한 것으로, 군밤과 군고구마를 파는 길거리 매대의 증가와 더불어 상업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동강 중간의 양각도의 호텔방에서는 강건너에 있는 시장이 보일정도로 컸었고, 기념품점은 가는 곳마다 있어 남쪽 손님의 지갑을 탐내고 있었다. 그리고 상점의 점원들은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 열심이었다. 밤거리는 이제 야경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져 있었고, 새로운 건설 현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외양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양시민들이 활기를 되찾았다는 점이다. 지난번 방북때 함께 갔던 남한의 어린이들이 ‘소년궁전’의 북쪽 어린이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 뒤로 빠지거나 쭈삣거리던 아이들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응답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부담스러웠을 남한 손님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과거와 달리 남북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부딪치고, 담소하는 것을 막지 않은 북한 당국의 결정도 의미 있었지만, 평양의 공공장소나 묘향산의 등산길에서 만난 북한사람들 대부분이 남한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맞아주었다.

 

평양의 외면적 변화나 사람들의 행동 변화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경제 사정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의 활성화와 유통되는 상품의 증대는 일반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 변화는 단순히 경제적 이유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동안 꾸준히 지속된 대북지원과 다양한 사회문화교류가 남한이 북한 사람들을 회유하여 체제붕괴를 유도할 것이라는 북한의 의구심을 약화시킨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동행하였던 남북어린이 어깨동무만 하더라도 근 10여년동안 평양에 어린이 병원을 지어주고, 춥고 굶주린 아이들을 꾸준히 보듬어 온 결과 상호이해가 돈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어깨동무 어린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북쪽의 아이들을 볼 때는 답답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적지 않은 분노감에 휩싸였다. 조금 더 마음을 열고, 그 만큼 문을 연다면, 북의 어린이들의 고통은 크게 줄어 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양이외의 지역은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강해졌는데, 일차적으로 북한 당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남한 당국이나 남한의 보통사람들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콩우유 공장 기계를 소독하기 위한 솔조차 어렵게 구하는 북한, 어린이 병원의 기초적인 물품을 절실하게 부탁하는 북한의사들을 여전히 괴물과 같은 공포의 대상으로 각색하고 있는 남한의 어른들을 생각하니까 참담한 마음마저 금할 수 없었다.

 

/이우영(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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