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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파 김조균 선생 10주기 추모공연' 소리전당서

정갈한 춤사위 전설로 다시돌아오다

금파 김조균 선생의 생전 공연 모습. ([email protected])

1998년 10월 30일 전주덕진예술회관에서 열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공개발표회'.

 

가슴을 졸인 것은 객석 뿐. 장구를 치던 스승은 제자의 춤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쇠약해진 몸을 일으켰다. '바람 한 자락 붙들었다' 놓듯 '한량춤'을 풀어낸 금파(金波) 김조균 선생(1940∼1998)은 제자이자 아들인 김무철씨에게 '한량춤' 부채를 건네주었다. 경건한 대물림 의식. 전설과도 같은 그의 뒷모습에 관객들은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해 12월 24일 금파 선생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김무철씨는 지금도 그 때 그 부채로 춤을 춘다.

 

전북 춤의 전설이 된 금파 김조균 선생. 그의 10주기를 기리는 추모공연 '전설(傳設)'이 3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다.

 

정읍·이리·전주권번에서 예기와 한량들을 가르쳤던 정자선과 그의 아들 정형인으로부터 '남무'와 '삼현승무' '한량무' '호적구음살풀이춤' '전주검무'를 전수받은 금파. 그의 춤은 투박스러우면서도 넉넉한 품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때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흑장삼을 입고 춤을 췄던 소년. 그러나 그는 서울의 큰 무대를 마다하고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전북무용협회 회장, 전주시립민속예술단 무용부감,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부 교수 등을 맡으며 전주춤의 뿌리를 지켜왔다.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능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섰던 금파 선생은 전북 무용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기려야 할 진정한 예술가"라고 그를 기억했다. 정승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은 "금파 선생은 전라도 정서를 춤으로 이입시켜 온 명인"이라며 "그의 춤 가운데 '한량무'는 남성적이면서 높은 수준의 기량과 품격으로 우리 무용원에서도 춤 레파토리로 정착시키고 있는 명무"라고 존경을 표했다.

 

헌정의 의미가 담긴 '전설'은 특히 김숙 전북무용협회 회장에게 각별하다. 중학교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까지, 김회장은 그 고단했던 삶을 진정한 춤꾼이 되기 위한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혼신을 다해 춤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오신 금파 선생님의 길을 되돌아보고 싶었다"며 이번 공연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전설'은 선생이 1961년 만든 금파무용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KNUA 무용단원들이 함께 한다. 1부는 '그들에게 바치는 장미-한량춤'과 2부는 '성스러운 광기-KNUA 무용원을 빛낸 별들', 3부는 '우리 전설 다시 돌아오다-학이여, 그리움이여!'로 채워진다.

 

1998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된 금파류 '한량춤'은 높은 예술성과 넘쳐흐르는 흥을 역동적인 춤사위로 풀어낸 남성이 추는 홀춤. 호남의 여유있는 산새와 평야가 춤 안에 담겼다. 'KNUA 무용원을 빛낸 별들'은 국내외 무용콩쿠르에서 수상한 17명의 무용스타들이 만든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실력있는 젊은 무용수들을 통해 우리나라 춤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학이여 그리움이여!'는 학처럼 고고했던 금파 선생의 춤사위를 떠올리며 정승희 한예종 무용원장이 직접 안무한 작품이다.

 

전북, 전주춤을 있게한 금파 김조균 선생. 죽는 날까지 무대를 잊지 못했던 그의 몸짓이 다시 무대 위에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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