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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호남 소외' 를 탓하기 전에 - 이경재

이경재(본보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지역별로는 영남이 특히 잘하고, 충청도도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호남은 좀 미흡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을 10개월 앞두고 청와대 출입기자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지역발전이나 예산을 따내는 문제는 단체장에게 달려있다. 단체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도 도와주고 싶어진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호남지역에 내려가 업무보고를 받을 때 지역사업과 관련해 하도 답답해서 내가 슬쩍 '이런 사업은 어떻습니까. 정부지원도 있을 것 같은데' 라며 힌트를 줘도 사업계획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무심하더라"

 

지난주 마무리된 국정감사에서는 오랜만에 '호남소외'라는 지적이 튀어나왔다. 호남지역에 대한 연구개발(R&D) 예산이 영남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게 지원됐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부터 올해 8월까지 3년 동안 호남지역에 지원된 R&D예산은 1,819억원(1,258건 )이었지만 영남 쪽엔 6,496억원(4,441건)이나 됐다(한국산업기술평가원 자료). 3배 이상이다.

 

또 정부투자기관과 공공연구기관, 대학·기업 등에 지원된 2006년도 연구개발비 역시 대조적이다. 총 27조3460억원중 호남권 지원액은 8,800억원(3.2%)인 반면 영남권엔 호남권의 4.8배(15.3%), 수도권엔 19.7배(63.4%), 대전·충청권엔 6.5배(17.1%)나 지원됐다. 그러니 '호남소외'라는 것이다.

 

해당 기관이 제출한 R&D 지원액 수치로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R&D 예산을 절대치로 비교할 수는 없다. 창의성과 사업성이 뒷받침돼야 하고 연구 아이템에 따라 지원액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설령 정치적 판단을 동원한다 해도 이명박 정부 이전 것이라 별 설득력도 없다.

 

호남소외를 거론하기 전에 연구개발 능력이 척박한 풍토, 부실한 자기노력을 먼저 탓해야 하지 않을까. 무턱대고 호남소외를 외칠 일이 아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영국의 케임브리지 테크노폴, 스웨덴의 시스타,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 등 성공적인 모델케이스는 모두 지방정부의 기업가적 마인드와 R&D 인프라 구축이 핵심 열쇠였다. R&D 인프라가 구축되고 연구소가 활성화되면 산업과 지역발전은 저절로 이뤄지게 된다. 기업들은 오지 말라 해도 찾기 마련이다.

 

과연 우리 지역의 자치단체와 대학· 연구기관들은 창의적인 노력과 내발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일이다. 정보에 어둡고 아이디어 개발을 소홀히 하면 항상 다른 지역 따라하는 뒷북행정일 수 밖에 없다. 행정관료는 대학 교수를 탓하고 교수들은 행정의 관료성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한다고 탓하는 풍토에서는 예산확보는 커녕 사업아이템도 성립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전북출신인 유희열 전 과기부차관도 김 전 대통령과 비슷한 말을 했다. "영남지역 대학과 연구소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어떻게 알았는지 사업을 추진하기도 전에 찾아와 사업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호남지역은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고 관련 사업이 있어도 체계적인 사업계획서를 갖고 찾아오는 경우는 없더라."

 

우리의 엉성한 속살을 드러낸 것 같지만 따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단체장들은 무얼 생각하는가. 주민 표를 엮어낼 사업에 몰두하는가 아니면 성공적인 지역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가.

 

내년도 예산작업이 한창이다. 단체장이나 연구기관· 대학들이 새겨야 할, 국정운영 경험자들의 비판적 충고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이경재(본보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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