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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존엄사, 국민적 합의 찾아야 - 정종섭

정종섭(서울대교수·법학)

작년 연세대병원에서 있은 인공호흡기 제거를 둘러싼 사건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 환자측의 주장을 받아 들여 병원에 대하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하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매일 같이 발생함에도 그 동안 이를 정면으로 다루지도 않았고, 진지하게 논의하지도 않았다. 지난 해 서부지방법원의 판결이 있고 나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판결이 있고 나서도 인공호흡기 제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고 가이드라인도 없어 병원측은 환자의 생명을 어떻게 하는 것이 타당한지 몰라 항소를 하였다. 이 사건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서부지방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 역시 환자에게 설치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인간의 생명 존중과 인공호흡기의 제거로 인한 사망을 어떻게 조화롭게 정당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서는 각 나라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 전통, 삶의 방식, 죽음에 대한 시각 등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어느 한쪽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죽음에도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어야 하고 따라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고통받는 환자로 하여금 존엄하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존엄사(尊嚴死)를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가 옳지 않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안락사(安樂死)라고 하고 이러한 안락사는 살인과 마찬가지여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비난받지 않으려면 인간의 생명존중을 외치고 인공호흡기의 제거는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보다는 더 쉽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 이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번 서울고등법원은 이 문제를 숙고한 끝에 인간의 생명도 존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는 4가지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환자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 진입하여 있을 것, 둘째, 환자의 일시적 충동이 아닌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중단의 의사가 있을 것, 셋째, 중단을 구하는 치료행위의 내용은 사망과정의 연장으로서 현상태의 유지에 관한 것에 한정할 것, 넷째, 치료중단의 시행은 반드시 의사에 의하여 행해질 것이 그것이다. 첫째 조건이 충족되었는지는 주치의의 의견만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법적으로 판단된다. 주치의가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오판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식물인간의 경우에는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가 있을 수 없기에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하여 판단하게 된다. 셋째 조건도 매우 엄격하여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나 일상적인 진료는 중단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판결로 인하여 이 환자에게서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민형사상 책임은 없다.

 

이 사건은 법원의 판결로 인하여 해결될 수 있지만, 그 상세한 판단의 기준은 여전히 필요하다. 법원도 현재 인공호흡기 제거에 대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린 결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만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건에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의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일응의 행동기준은 제시되었지만, 실정법을 근거로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매 사건마다 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것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를 찾아내는 일이다. 먼저 이 문제에 대한 전문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과 이를 우리 사회에 공론화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는 법률로 입법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률로 입법하는 경우에는 많은 경우의 수를 참작하여 이번 법원의 판결보다 더 상세한 규정이 만들어 질 것이다.

 

전국의 각 병원에서는 이러한 사례에 매일같이 부닥치게 된다. 따라서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한 입법 작업을 하루바삐 착수하고 사회공론화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구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이는 어느날 갑자기 법안을 제출하고 일사천리로 처리하거나 마냥 미루어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회의원들이 할 일이다.

 

/정종섭(서울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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