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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석전(石顚) 박한영 - 조상진

만해 한용운은 기개가 높은데다 '님의 침묵'등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도 사형으로 모시는 석전(石顚) 박한영(1870-1948)에게 혼난 적이 있다.

 

만해가 '불교유신론'을 썼을 때다. 만해는 이 책에서 승려들의 가취(嫁娶·장가듦)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청정 비구였던 석전이 불같이 노해 만해에게 이렇게 쏘아 부쳤다.

 

"지옥이란 것이 있다면 너같은 놈이 들어 가야 할 곳이다. 승려가취론 때문에 조선 중 다 망쳐 놓은 놈이니…"

 

이에 만해는 "제가 뭐 조선불교 망쳐놓고 싶어서 그랬습니까. 세상은 달라지는데 불교는 조금도 달라지는게 없으니 그런거죠"라고 어물어물 대답하고 말았다.

 

미당 서정주는 석전을 '나의 피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며 따랐다. 방황하던 미당을 데려다 옆에 두고 가르치는 등 앞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1934년 봄, 미당은 서울 개운사 별채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 연기를 뿜는듯 하는구먼" 이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어느 순간 석전이 나타나 있었다. 석전은 "육당(최남선)은 서른세살까지 피우던 담배를 역사 공부하려고 끊었다. (너는) 공부하려고 왔다며, 그까짓 것 하나 끊지 못하냐"며 안타까운듯 지나쳤다. 크게 꾸지람한 것은 아니지만 미당은 담배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땅만 보았다. 미당은 훗날 "스님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쓰라린 눈물이 고여 있음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완주군 초포면에서 태어나 위봉사에서 출가한 석전은 일반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불교계나 지성계에서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광범위하다.

 

당대 석학으로 이름난 육당은 "스님의 해박하심은 내외전을 궤뚫어 감히 내가 미칠 바가 못된다"고 하였다. 위당 정인보 역시 "사농공상(士農工商) 무엇에 관한 것이든 화제가 고갈될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

 

이들 말고도 이광수 안재홍 홍명희 이병기 김동리 신석정 조지훈 등도 그의 영향권에 있었다.

 

한국 근대 불교의 주춧돌을 놓은 대강백이자 선승인 석전 대종사를 추모하는 학술세미나가 20일 고창 선운사에서 열린다. 그의 열반 60주기를 맞아 유묵과 육필원고 등도 전시된다. 그의 큰 뜻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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