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상인·재래상권 보호 큰 보람"…직장생활 15년만에 시민연대로 복귀
"노동운동 하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나서던 날 어머님이 '창엽아 가지마'라고 뒤에서 울며 부르는데, 차마 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모습 보면 가지 못할 것 같고, 사실 속으로 저도 (노동운동을 시작한다는 게) 두려웠지만 눈물바람을 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전북대 경영학과에 84학번으로 입학, 학생운동을 하다 1986년도에 강제징집돼 군복무를 마치고 온 20대 이창엽(45)은 학교 대신 노동현장을 택했다. 6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장남으로 홀어머니와 살아온 이씨, 어머니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간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 어머니의 눈물
당시 어머니의 눈물을 뿌리친 기억이 이씨의 가슴 속에는 아직도 아프게 남아 있다. 이씨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직장생활의 긴 여정을 거쳐 지금은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시민감시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87년 이씨는 근로자 100여명이 근무하는 전주의 P 섬유업체에 취업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다른 근로자 16명과 뜻을 모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운동이 불붙던 시절, 전주에도 많은 업체들에 노동조합이 생겨났고 이씨는 그 중 한 업체에서 노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임금과 단체협상 등을 둘러싼 기나긴 파업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파업중인 아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자 전주 팔복동의 공장으로 밥과 김치를 싸와 "밥이나 잘 챙겨 먹어라"며 눈물을 흘렸다. 파업이 길어지자 회사는 1989년 결국 문을 닫았다.
이씨는 "사업주 입장에서 보면 지독한 노동자 만나서 회사 문 닫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며 "하지만 당시 전북에는 지금 돈으로 88만원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주며 노동집약적으로 운영하는 경쟁력 없는 임가공업체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씨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다 90년 3월 복학했다. 당시 전북대에는 총학생회와 총대의원회가 이중적으로 운영되던 상황. 이씨는 총대의원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의장에 선출되고 이듬해 목표를 이뤘다. 회사와 총대의원회의 해산. 이때부터 이씨는 '해산 전문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돈 벌어 운동에 기여하자
졸업 뒤 이씨는 서울의 한 유명가구업체에 취업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기획사를 차리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망했고 회사는 이씨를 다시 받아줬다. 90년대 중반은 새로운 시민운동이 모색되던 시기, 돈 벌어서 운동에 기여하자는 생각에 회사생활을 했다고 이씨는 겸연쩍게 말했다. 결혼을 하고, 과장까지 진급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결국 이씨는 회사시스템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퇴사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논술학원 강사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문득 운동을 가르친 선배 김영기, 어릴적 친구 김남규(이상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부) 생각이 났다. 2007년 1월, "충분히 충전했으니까 다시 뛰어들자"라는 생각에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에 돌아왔다. 직장생활 15년만의 귀환이었다.
▲ 보람된 중소상인네트워크
근 3년에 이르는 시민단체 활동 경험 중 이씨는 올해 초부터 진행한 중소상인살리기 전북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를 가장 보람된 일로 뽑았다. IMF외환위기 무렵 외국 대형유통자본의 진입에 맞서 국내 대형유통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이미 시대적 소명을 다했고, 이제는 국내외 대형유통업계에 맞서 영세·재래상권을 보호하는 취지로 법을 개정해야 된다는 게 네트워크 결성의 가장 큰 이유다.
이씨는 "8월초 네트워크가 출범하고 활동하기까지 슈퍼마켓협회, 주유소협회, 전북YWCA, 경제살리기도민회의 등 여러분들의 적극적 협력이 큰 힘이 됐다"며 "중소상인 보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준 도민과 참여단체의 적극적 협력으로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와 도내 출신 국회의원 모두 법률개정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내년에 법률 개정을 확신한다는 이씨는 네트워크의 의의로▲ 국회나 대형 이익단체가 아닌 당사자인 상인단체가 법률개정의 움직임을 만들어 낸 점 ▲그간 문제제기, 성명발표에 그치던 시민단체가 지역단체와 협력해 문제해결에 나선 점 등을 뽑았다.
이씨는 그러나 "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영세상인들은 생명줄이 달린 문제임에도 당장 먹고살기가 어려워 목소리를 내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며 "어떤 정치권력도 시민의 목소리를 자발적으로 수용해 준 적은 없기에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민과 시민단체가 서로 관심을 갖고 활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