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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부와 민주주의

(36)<케빈 필립스 지음, 오삼교·정하용 옮김, 중심, 2004>

최근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분노나 짜증보다는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분노와 짜증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 그건 그 정치인들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우리 모두의 무감각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법대로 허용된 돈만 갖고 정치할 수 있는가? 세상 물정을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절대 불가'를 외치는데, 우리는 그건 모른 척 하고 "운 좋은 정치인은 빠지고 운 나쁜 정치인은 걸려드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그런 현실에 대해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은 미국 저널리스트 케빈 필립스(Kevin Phillips)가 쓴 「부와 민주주의 : 미국의 금권정치와 거대 부호들의 정치사」(오삼교·정하용 옮김, 중심, 2004)라는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미국정치가 돈에 먹힌 현실을 차분하게 역사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의 제도화'라고나 할까. 이 점에선 한국정치가 미국정치보다 더 깨끗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부정부패를 제도화까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어긴 정치인들이 법망에 걸려든 게 연례행사처럼 자주 일어나지만, 그건 한국정치가 미국정치보다 그만큼 덜 썩었다는 증거로 보는 게 옳으리라.

 

저자에 따르면, 미국정치가 거의 공공연하게 값으로 흥정되는 시장터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금권의 정치통제력이 증대되면서 '대통령 매수하기(Buying the Presidency)'와 '의회 매수하기(Buying of Congress)'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보수파 내부에서도 금권정치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이단자 패트릭 뷰캐넌은 "나는 혁명을 원한다"고 외쳤다. 그가 말하는 혁명은 "노동자와 중산층이 공화당을 다시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지 부시를 겨냥해 미국사회가 "하버드와 예일 출신들이 장악한 귀족들의 공화당"에 의해 배신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텍사스의 억만장자 출신 로스 페로마저도 부시를 포함한 공화당 기득권 세력을 '컨트리 클럽 멤버들'이며 '부잣집 아들들'이라고 공격했다.

 

전문가들은 2000년 이전까지의 대통령 선거자금 모금을 "부의 예선(Wealth primary)"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거액 기부자의 후원이라는 새로운 선거 요소를 압축한 표현이었다. 일부 인사들은 예비선거 자체를 '국가적 경매(national auction)'라고 조롱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의 선거자금 모금체제를 "국가를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응찰자에게 팔아 넘김으로써 공직을 유지하려는 양당 공모하의 정교한 직권남용체제(influence-peddling scheme)"라고 비난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선거와 정치가 돈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를 넘어서 사실상 매수되었다는 걸 말한다. 물론 여전히 대통령 선거에 기대를 거는 미국인들도 많지만, 서민층은 정치에 등을 돌린지 오래다. 1996년 대선에서 소득 분포의 최하위 20%에 속하는 계층의 38.7%만이 투표한 반면에 최상위 20%에 속하는 계층은 72.6%가 투표에 참여했다. 알아서 가진 자들끼리 다 해처먹으라는 냉소의 표현인 셈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돈에 의해 먹혔다는 논지를 전개한 저자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서구의 유권자들이 경제에 대한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20세기의 민주주의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의 전망이 맞을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유권자들이 경제에 대한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점에선 한국도 미국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대기업들이 국제경쟁의 주요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대다수 유권자들이 기업에 목을 매고 사는 형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의 주장 중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돈에 미쳐 돌아가는 건 정치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정치는 사회의 반영일 수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들어 로날드 레이건 시대가 출범하면서 노골적인 탐욕이 공공연하게 예찬되었고, 「회사」, 「벤처」, 「백만장자」, 「기업가」, 「성공」 같은 제호를 가진 신간 잡지들이 쏟아져 나와 보통사람들의 경제적 야망을 자극했다.

 

1990년대에도 「신은 당신이 부유하기를 원한다(God Wants You To Be Rich)」의 저자인 폴 제인 필저(Paul Zane Pilzer), 「용감하게 부자되기(Dare to Prosper)」라는 책을 펴낸 전세계통합교회(Unity Church Worldwide)의 캐서린 폰더(Catherine Ponder), 「성공의 7가지 영적인 법칙(The Seven Spiritual Laws of Success)」의 저자인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 등이 '돈 예찬론'을 내놓았다.

 

미국인들이 늘 돈에 미쳐 돌아가는 건 아니다. 역사학자 아더 슐레신저 2세는 미국사회가 약 3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공익(public purpose)의 시대와 사익(private interest)의 시대가 교차해왔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의 전체적 여건을 향상시키려고 하는 '공익의 시대'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대규모 변화를 축적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혁신의 물줄기는 곧 정치를 질식시킨다. 왜냐하면 정치는 이 변화를 소화시킬 시간적 여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 더구나 지속적인 공익 지향 성향은 정서적인 면에서 곧 고갈된다. (왜냐하면) 한 국가가 고도로 긴장된 정치적 쇄신의 추동력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람들은 다시 조용한 사적 생활에 침잠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지속되는 전투적 구호와 요구에 지치고 끊임없는 국가적 규모의 사안들에 식상해서, 또 그 혁신 노력의 결과에 환멸을 느껴서 이들은…휴식과 기력 회복을 위한 휴지기를 추구한다. 이렇게 해서 공익을 추구하는 열정, 이상주의, 개혁 운동은 침체기에 접어들고 공공의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장 경제의 법칙이 다시 좌우하게 된다."

 

이와 관련, 필립스는 "역사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는 주기로 인해 미국은 부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으며, 하나의 주기에서 다른 주기로 옮겨갈 수 있는 동력이 미국 정치가 지닌 진정한 힘이다"고 전제하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쉽게 중첩되고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반드시 분리되어 유지되어야 한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공익·사익 교차론'은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사는 어느 사회에서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은 지금 '공익의 시대'인가, '사익의 시대'인가? 물론 사익의 시대다. 그러나 주기는 미국보다는 한국이 더 짧다. 물론 '빨리빨리'의 원리 때문이다. 이제 곧 '공익의 시대'가 돌아오게 돼 있다. 그렇지만 저절로 오진 않는다. 공익을 추구하겠다고 외쳤던 사람들의 무능과 위선에 질려 사익을 택한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성찰과 비전이 필요하다. 돈 문제에 대해 정직해져야 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익의 시대건 공익의 시대건 한가지 변치 않는 원리는 바로 이것이다. "이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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