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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백가쟁명] 농촌, 농업, 농사 - 조태경

조태경(농촌살림연구소장)

 

며칠 전 전북도청 광장 앞에 쌓여있는 나락 가마니들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속울음을 삼키고만 있었다. 지난 가을에 생산한 유기농 쌀이, 겨우살이를 위해 팔아야 할 쌀이 우리 집안 창고에도 묵혀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간 유기재배를 통해 살려진 생명의 땅에서 지렁이와 거머리, 메뚜기와 개구리, 산돼지와 뱀이 함께 뛰놀며 자란 쌀이었다. 쌀 한 톨마다 자연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땅기운으로만 키워낸 귀한 쌀이었던 것이다. 밥은 하늘이라고, 하늘의 얼이라고, 그 얼은 참 생명의 빛이라고,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목숨을 이어간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농업, 농촌, 농부, 그리고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생각하며 빚었던 내 쌀이 똥값처분 받을 순 없었던 것이다. 굶주리는 서민들에게 그냥 주면 줬지 헐값에 매각할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쯤 되면 이젠 쌀이, 쌀이 아니다. 쌀이 돈으로 보이고 상품이 되어버린 이상, 쌀은 쌀일 수 없다. 쌀에 깃든 농부의 정신을 담아낼 마음의 그릇이 없는 시대에, 쌀은 이미 쌀이 아닌 것이다. 그 존재가치와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는 시대에, 추락하는 쌀 가격에 가슴 아팠다. 전북도청과 우리 집안 창고가 머릿속에 겹치는 상황 속에 참담한 심경을 쓰러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뜻을 두고 농촌에서 산다는 것, 농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눈물겨울 때가 참 많다. 논에 우렁이를 사다 넣던 날, 내 가슴이 얼마나 설레었던가! 매일같이 논두렁을 둘러보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히 하였던 날들의 추억, 산돼지가 내려와 논을 휘젓고 다닐 때조차도 오히려 얼마나 큰 기쁨에 가득 찼던가! 햇빛, 바람, 비, 구름, 별들의 기운으로 온 우주가 협력하여 키워낸 한 알 한 알. 그 노고에 벼이삭이 고개 숙일 때 또 얼마나 흐뭇했던가! 자연의 보살핌으로 일구어낸 생명의 쌀. 우리는 언제서야 밥 자체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밥을 통하여 하늘의 얼을 호흡하고 온 우주와 소통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러한 쌀을 산다는 것은, 이 땅에 한 농부를 심는다는 것이요, 농촌사회에 희망을 불어 넣어준다는 의미일 게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의 농부가 모여 농촌사회가 바로 선다면 농업 회생의 길을 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인도의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선생은 농촌공동체의 정신회복을 강조하였다. 나라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농촌마을 하나하나가 인도를 구한다고 하였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투쟁이 절정에 서서 승기를 굳혀갈 때, 간디 선생은 "마을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내겐 영국으로부터의 독립도 무의미하다."고 하였다. 인도의 혼은 농촌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마을공동체가 근간이 된 자립자치의 인도사회를 바랬다. 천혜의 땅 전북은 지형적 특색을 축복으로 여기며, 농촌이 살아있는 도농상생의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조태경(농촌살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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