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죽막동 유적지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동아시아 해양제사 유적지로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같은 조명은 국내 학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본학자에 의해서다.
일본 오이타현 고고학회 회장인 시미즈 무나야키 벳푸대 교수는 임효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서울대 고고학과 명예교수)과 함께 최근 죽막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학계가 죽막동의 가치나 중요성에 비해 너무 조용한 것 같다"고 점잖게 일침을 놓았다.
그는 "동아시아 제사 유적지 중 남은 것은 죽막동과 일본 오키노시마 두 곳 뿐"이라면서 "이곳이 오키노시마 보다 규모가 10배 이상 크고, 특수한 형태의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고 밝혔다.
변산반도 수성당 뒤쪽에 30㎝ 두께로 쌓여 있는 이 유적지는 1992년 국립전주박물관이 일부만 발굴한 바 있다. 이후 거의 방치 상태로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다.
이 유적지는 선사시대 이래 바다 혹은 해신(海神)에게 제사를 지내왔던 곳으로, 다양한 유물들이 나왔다. 이중 원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원삼국 시대의 일부 유물 뿐이다. 통일신라 이후의 유물은 상당부분 교란되어 있다.
이곳 수성당이 위치한 지점은 오랫동안 중국이나 북방의 문화가 한반도 남부로 전파되고 또 일본으로 건너가는 해상항로의 중요한 지점이었다. 말하자면 국제교역의 중간 기항지였다.
당시는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해 배들이 연안을 따라 섬이나 육지의 주요부분을 추적하면서 항해했고, 특이한 형상으로 돌출된 이곳을 거쳐갔던 것이다.
한편 일본은 오키노시마 유적을 1958년부터 발굴, 작은 파편까지 8만 점에 이르는 유물을 추려 국보급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시미즈 회장은 "오키노시마에서 나온 석제 모조품인 배와 칼이 죽막동에서도 나왔다는 게 놀랍다"며 "이는 해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바친 것으로 일본과 해상무역을 해왔던 증거"라고 반겼다.
이번에 그는 임 교수와 함께 죽막동과 오키노시마 유적을 같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는데 합의했다.
우리의 보석같은 유적을 다른 나라 학자가 높이 평가해 준 것은 반가우나 부끄러운 대목이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조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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