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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응원의 집단성'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 전용배

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이 태극기로 물들고 있을 때 독일국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대신 수천 명의 독일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팀의 깃발을 들고 독일을 응원했다.전범 국가인 독일은 국가를 내세우는 데 주저하는 문화가 있다.반면에 같은 전범 국가인 일본은 일장기를 당당하게 내세운다.일본대표팀의 닉네임인 '울트라 니폰'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대신 '무임승차'는 경계하는 편이다.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축구팬들의 구호는 '축구팬들만 경기장으로'였다.월드컵은 축구팬들을 위한 축제이지 국민을 위한 잔치는 아니라는 관점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전.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 30분에 경기가 열렸음에도 대한민국은 잠들지 않았다.수십 만의 인파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이러한 상황이 이성적이냐,비이성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과연 우리나라 이외에서 가능하냐는 의문이 든다.도대체 우리 국민의 이러한 집단성의 원류는 어디에 있으며 실체는 무엇인가.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집단성은 한국의 문화이자 정체성이라고 본다.집단성은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필연적 위험성 때문에 때로는 경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선진적 문화로 귀결이 가능하기도 하다.

 

월드컵의 이러한 집단적 응원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면 해석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우리가 평소 축구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국가관이 남달라서 '조국 사랑'이 지극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군사독재를 통해 집단성과 획일성에 대한 부작용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해야 마땅한 형편이다.이러한 집단성과 획일성 때문에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한 역사를 생각하면,오히려 부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집단성이 우리문화의 깊숙한 곳에 축적되어 내면화되었다는 사실이다.북한의 정대세가 북한국가를 들으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국민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아무리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도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이러한 집단성이 갖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견학한 적이 있다.광주광역시에 있는 '빛고을 노인건강 타운'이 그 곳이다.이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복지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었다.선진국의 양로원과 달리 우리나라의 노인은 많은 이들과 함께 거주하고 즐기기를 원한다.'빛고을 노인건강 타운'은 하루에 이용객이 5천 명이며,수영장과 호텔급 목욕탕,점심은 천원을 받지만 체육관,당구장,공연장,물리치료실,헬스장,노래방,무료건강검진센터 그리고 기타 180여 개의 프로그램들은 무료 이용이다.한국에서 노인 5천 명이 매일 집단적으로 모이는 장소를 필자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러한 대형 노인건강 타운은 공공영역이 나서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건설이 불가능하다.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노인들은 외로움 때문에라도 함께 있어야 한다. 대형 노인 건강타운은 어쩌면 우리나라와 같이 집단적 문화를 선호하는 국가에서나 가능하다.매년 70억 원의 운영비는 광주광역시가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공의 역할이다.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금이 아깝지 않음을 느낀다"고 말했다.매일 이용하는 수천 명의 노인들은 우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새벽 3시 30분에 수십 만의 인파가 거리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마음의 기저에는 "나 외로우니,함께 가자.우리 이렇게 국가를 사랑하니,우리를 쳐다봐다오"라는 외침이 숨어 있다.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이 집단성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결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궁극적인 역할이자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집단적인 응원문화를 보면서 '군중 속의 고독'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광장이나 거리를 열어주는 것만으로 국가나 자치단체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응원문화를 국가나 도시발전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현상보다는 왜 모이려고 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삼삼오오의 서구사회와는 달리 동양의 농경문화는 집단성이 이미 문화에 내재화되어 있다. 집단적인 응원문화를 보면서 '군중속의 고독'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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