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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소비주의의 천국

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자본주의 제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비하여 제도적으로 우월하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부를 보장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함께 부를 지배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함의 가치나 자본주의 이외의 가치에는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우월의 관계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완의 관계이다.

 

가령 물질 자본주의의 절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비주의, 소비만능이 불러오는 다양한 계급적 갈등의 문제나 자원고갈, 생태학적 이슈들은 우리들에게 자본주의의 제도적 보완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물질 중심의 가치가 생산해온 풍요와 함께 상대적으로 증대한 낭비의 이슈가 그러하다. 쓰레기통의 문명, 쓰레기통의 사회학으로도 표현되는 낭비의 문제는 이제 "소비는 허락하지만 무엇을 버리는가는 자유롭지 않다"고 표현될 정도로 사회학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즉 쓰레기통이 도덕적 이슈가 된 것이다.

 

뚱뚱한 몸매와 날씬한 몸매 사이에는 체격의 차이와 몸무게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단순히 인식의 차이인가, 아니면 강박관념인가? 육체는 정신에 봉사하도록 설계된 신학적 가치는 거꾸로 사람은 육체에 봉사하여야 한다는 조항으로 바뀐 듯하다. 모두가 날씬해지기 위하여, 흉하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육체관리인으로 변한다. 그리고 육체를 관리해주는 의사는 오늘날 흡사 성직자의 지위를 누린다. 육신소비주의의 절정인 것이다.

 

통계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육체를 관리하는 것보다 아름다움을 위하여 육신을 관리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통통함과 뚱뚱함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인식되던 시대도 엄연히 존재해왔다. 고대의 상징적 인체 조각상들이나 회화작품들은 대부분 통통하거나 뚱뚱하다. 다산의 상징도 있지만 메마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하여 건장하고 통통한 인간미를 가꾸어왔다. 오늘날 이러한 미적 가치는 완전히 어불성설이 되었다. 미를 위하여 생사에까지 모험을 거는 의학적 시술이 성행하는가 하면 그 후유증이 사회문제가 되지만 미를 위한 모험심은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하층계급과 유복한 계층 사이에는 육체와 의료서비스에 대하여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가령 의약품의 절반은 보험의 가입 없이도 구입할 수 있지만 질 높은 건강을 위해서는 보험이 반드시 적용되는 의사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료의 실재 효과보다는 의사를 만난다는 의식적이고 공회적인 소비가 행해진다고 본다. 그러므로 서민은 약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고 유복한 계층에서는 의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와 약은 치료기능보다 심리학적이고 문화로서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늑대소년이 나타난 것은 소년이 늑대들과 함께 생활하여 마침내 늑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늑대들이 하는 행동을 배웠고, 늑대가 생존하기 위한 온갖 기능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늑대소년은 사람모습을 하였지만 사실은 늑대로 변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사람의 짓을 배우지 못하면 불행하지만 사람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을 스스로를 소비인간, 또는 소비형 인간으로 부른다. 상품에 둘러싸여 상품과 함께 생활한 끝에 마침내 상품화 된 소비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사람에 둘러싸여 살지 않고 상품에 둘러싸임으로써 물질인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품중심, 소비사회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은 물론 풍부함이 주는 물질의 마력으로 인하여 본질이 훼손되는 가치의 역전이 심각하다. 과잉의 누적, 아름다운 희소성의 소멸, 호화로운 꿈의 나라의 등장 등은 경전에 묘사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아니라 상표와 지폐가 난무하는 소비의 마당이 된 것이다.

 

/ 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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