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농민들에게 '부농의 꿈' 심어주러 귀향했죠"
완주에서 '빨간 모자'를 모르면 간첩(?)으로 통한다. 과학적 농사를 주창해 유기농법을 전파했고, 전국에서 직거래 장터를 처음 기획해 활성화시켰으며, 완주 골프장 건립까지 막아냈다. 전혀 일관성 없어 보이는 그의 행보는 '괴짜'의 객기가 아닌, 농촌을 살리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농민 운동가 구윤회(58·산하농원 대표)씨는 서른여섯, 혈기 방장한 나이에 행정안전부를 박차고 나왔다. 농촌에 희망이 있다는 걸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완주 부농 집안에서 자란 그는 '논밭뙈기가 재산이고 농사가 깊은 공부'임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런데 주말에 도시 사람들이 이곳에 놀러오면, 주민들이 그렇게 욕을 했어요. 왜 저럴까 했는데, 그게 다 피해의식이더라고. 농민들도 돈 벌게 해줘야겠다 싶었습니다. 일본 사례를 분석해보니, 20년 간 농산물 중 가격 변동이 가장 적은 게 딸기였어요. 고소득 작물이 답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물은 있었다. 몸에 해로운 농약을 뿌리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했다. "'풀약'을 안 뿌려 논을 '피바다' 만든다"고 손가락질 하던 농가들은 2차 피해를 우려해 그의 논에 물마저 대주지 않았다. 그 때 접한 게 미생물 농법이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쌀값이 폭락할 거라고 전혀 상상을 못했다고. 그 때 하우스 재배가 퍼지기 시작한 거야. 초반에는 좋았는데, 3년 지나니까 농사가 안 돼."
그는 "정부도, 대학 교수도 뾰족한 이유를 찾지 못해 실패하는 농가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그 때 만난 한국퇴비농업기술인협회(옛 미생물농법연구회)는 농사가 실패한 것은 농약을 치거나 화학 비료를 뿌리면서 염료가 누적 돼 미생물이 살지 못하게 된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때부터 그는 농약·화학 비료 대신 유기물을 발효시켜 만든 '액비' 사용을 통한 유기농법 알리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그를 '천덕꾸러기' 취급하던 농민들도 조금씩 유기농법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농사는 무조건 밑지는 장사"다. 태풍이라도 오면 논밭은 쑥대밭이 됐고 그는 빚더미에 앉았다. "연초엔 까맸던 머리가 연말만 다가오면, 농협에서 빌린 이자 갚느라 하얗게 새버렸다"고 했다.
그 때 완주군 농민회를 만났다. 그는 농민회를 통해 "미국이 식량과 석유를 내세워 세계를 재패하려는 야욕을 위해 우르과이라운드(UR)나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식량 주도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2001년부터 완주군 농민회장, 전북농민회총연맹 조국통일위원장, 가톨릭농민회 고산분회장 등을 맡아 농민 운동의 선봉에 선 것도 그런 배경이다. 하우스에 들어갈 때마다 떨어지는 이슬비를 막기 위해 쓰기 시작한 '빨간 모자'는 농촌 데모 현장에서는 더욱 빛을 발했다.
농촌 시위 때에는 '강성파'로 통하는 그지만 마을에선 '웃는 얼굴'이 명함이다. 자녀 교육 문제로 떠나려는 농민들을 위해 컴퓨터·영어·서예 강사를 초빙해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수업을 진행시키기도 했다. "마을을 되살릴 밑천이라는 생각에 농민들이 떠나는 건 막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산하농원(www.sanhafarm.co.kr)을 통해 '상생 농법'을 전파하고 있다. 산하농원은 농작물을 키우는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도시민들까지 즐길 수 있는 정원을 갖춘 곳. 페이스북·트위터는 물론 온라인 홈페이지에 '영농일기'를 써가며 38가지 품목으로 검증 받은 유기농법을 널리 알리고 있다. 농민을 살리고, 밥상 안전까지 지킬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마케팅에 취약한 농민들을 위한 '농민 직거래 장터'(The Farmer's markets)를 전국 최초로 기획해 '농업인의 날'에 '대한민국 산업 포장'(1999)을 탔던 그는 2003년 전국 최초로 제주도까지 생딸기 택배도 이뤄냈다. "더이상 물러날 곳도, 더 잃을 것도 없다"는 그는 "그러나 20년만 지나면 농사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장사(將士)처럼 대화를 이어갔던 그는 기자가 산하농원을 나설 무렵 다시 기운 뻗친 청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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