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김동수 시인 서평
그 답을 어떤 이는 '은근과 끈기' 혹은 '선비 정신'에서 찾는 이도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조상들이 어떤 눈물과 사랑 그리고 소망을 안고 반만년을 이 땅에서 살아 왔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오늘날 세계화의 조류 속에 휩쓸려가고 있다.
이러한 무국적 무정형의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누구이며', '한국인의 정신적 고향은 어디인지?'를 되묻고 싶을 때 우리는 '삼국유사'를 먼저 찾지 않을 수 없다.
고려 충렬왕 7년(1281년)에 일연 스님이 편찬한 이 책에서 우리 민족의 연원과 조상들의 정신적 초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삼국사기'에서 누락된 '고기(古記)'가 원형 그대로 기록되어 우리 민족이, 국조(國祖)가 뚜렷한 배달의 단일민족임을 확인시켜 주는가 하면, 우리 고대의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미술·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이 총망라되어 명실 공히 우리 민족의 얼이요 혼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 태어난 고향을 모른다. 누구나 어머니의 태내(胎內)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은밀하게 속삭이는 하나의 신화가 있어, 잃어버린 옛날의 아득한 기억을 일깨워주고 있으니' 그것이 '삼국유사'라고 이어령 선생도 말한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단군신화'에 나온 '환웅과 곰'의 이야기도, 다른 나라의 신화들처럼 그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아래 신과 인간 그리고 짐승들과의 조화와 평화라고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화쟁관(和諍觀)이 담겨 있다.
또한 '미륵사지'와 '사자암'에 얽힌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설화가 아닌 하나의 역사적 실체로 밝혀진 사실, 그리고 '처용가'(향가)에서 처용이, 아내와 역신이 동침한 장면을 목격하고도 분노와 증오 대신 오히려 이를 노래로 지어 부르고 춤을 추면서 절제와 관용으로 역신을 감복케 한 장면 등은 다른 나라의 신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윤리적 미덕이 아닌가 한다.
'삼국유사'를 읽다보면 어느 것 하나 오늘 날 우리네 삶과, 아니 내 어렸을 적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과 닮지 않는 장면이 없다.
거기에서 그분들의 숨결을 다시 만난 듯 낯익고 정겹다. 한 민족의 본적지는, 다시 말해 한 민족의 정신적 고향은 그 민족이 만들어낸 신화 속에 있다고 한다. 신화는 어제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일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신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집단 무의식이요, DNA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삼국유사'는 천손(天孫)의 후예인 '한국인의 원초적 상징' 아니 '한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서 아직도 우리의 마음 저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는 한국 최고의 고전이요, 인문서가 아닌가 한다. / 김동수 시인(백제예술대 교수)
△ 김동수 시인은 남원 출생으로 1982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하나의 창을 위하여', '말하는 나무' 등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생성미학', 시창작 이론서 '시적 발상과 창작', '한국비평문학상',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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