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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 말을 걸다 '바람결 그대' - 춤, 일상의 공간서 소리 없이 이뤄지는 관객과의 대화

▲ 사포 말을 걸다 '바람결 그대' 공연 모습.
졸졸졸 인공의 시냇물이 흐르는 '은행로 길'을 따라 걷다가 '어진 길'을 만나 열 발짝쯤 경기전 쪽으로 꺾어 들면 '공간 봄'이란 사각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열려진 대문을 지나 담벼락을 따라 한 줄로 뚫린 오솔길을 걸어 들어가면 화단처럼 꾸며진 작은 공터가 있다. 이 공터를 둘러싸듯 두 개의 건물이 'ㄷ' 자 모양으로 들어앉았고 그 틈새에 자그만 공간 하나가 더 마련되어 있다. 군데군데 카페테이블이 놓인 실내공간과 두 곳의 작은 공터, 사포현대무용단이 기획한 '말을 걸다'(Accost with Dance)의 다섯 번째 공연인 '바람결 그대'(9월22일)가 관객들을 만나는 공간이며 춤의 무대이다.

 

실내 공간 안쪽에서 쟁반에 찻잔을 받쳐 든 여인들이 사뿐사뿐 걸어 나옴으로써 춤이 시작된다. 카페에 미리 자리 잡고 앉은 관객들과의 교감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창밖에서는 청바지차림 소녀들이 경쾌한 율동을 시작한다.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의 틈새를 골고루 누비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의 시선도 함께 움직이고 그들 사이에는 말없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9명 무용수가 함께 혹은 번갈아 추는 군무와 박진경의 솔로, 강정현과 최은봉의 듀엣, 이어지는 3인무 등에 관객들은 점점 몰입해간다. 청바지의 율동이 아이돌 세대에 대한 말 걸기라면 박진경의 솔로는 하나뿐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여인의 순정이며 상사화 앞 벤치에 앉아 등을 맞대고 추는 감각적인 듀엣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볼 수 없는 상사화(相思花)를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고 비좁은 공간에 모여앉아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숨죽이며 주시하는 관객들은 무대의 일부를 구성할 뿐 아니라 춤추지 않는 또 다른 출연자들이다.

 

'난초 화분의 휘어진 / 이파리 하나가 /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 잔잔한 기쁨의 / 강물이 흐른다.' (나태주의 '기쁨')

 

시인이 난초 잎에서 발견한 잔잔한 기쁨처럼 무용수와 관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기쁨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김화숙(사포 예술감독, 원광대 교수)이 의도한 대로 춤을 통한 관객과의 대화가 극장무대가 아닌 일상의 공간 속에서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화숙은 뿌리 깊은 호남의 예술적 DNA를 바탕으로 시정(詩情) 넘치는 감성적 춤을 표방하면서도 강한 역사성과 사회성을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춤 캐릭터를 가졌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모티브 삼은 '그해 5월', '편애의 땅', '그들의 결혼' 등 3부작과 '달이 물속을 걸을 때',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등 수많은 창작품을 남기고 있는 그를 나는 '신 서정주의 감성언어의 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포, 말을 걸다'란 일관된 주제 하에 5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감하는 다섯 번째 작품인 '바람결 그대'를 보면서 그의 춤 세계가 관객 속으로 점점 더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 사포(SAPPHO)'란 이름이 본래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

 

/ 무용평론가 이근수(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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