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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코로나19로 지친 마음 위로받길", '별빛 콘서트'

전주세계소리축제가 4일째 진행된 가운데 19일 오후 5시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별빛 콘서트가 안방으로 찾아가 코로나19로 지친 도민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소리축제 별빛 콘서트는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인기 가수들의 노래와 뮤지컬, 드라마 또는 영화 OST를 선보인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번 축제에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손승연과 히든싱어 김경호 편에서 완벽한 모창을 선보인 곽동현 뮤지컬 배우, 국내최초의 쇼콰이어 그룹인 하모나이즈, 코리아쿱 챔버 오케스트라 등이 출연했다. 첫 무대는 하모나이즈가 포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무대에 서지 못한 예술가들의 힘든 마음을 담아 This is me, 라이온킹 OST로 알려져있는 King or pride rock 등을 선보였다. 특히 하모나이즈는 그간 무대에 서지 못한 설움을 표현한 듯 무대 위에서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장석 예술감독은 무대없는 상황은 그간 생각해 본적이 없다며 이번 무대를 통해 나를 다시 되찾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두 번째 무대는 곽동현 뮤지컬 배우가 장식했다. 그는 하모나이즈와 함께 큰 사랑을 받았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시작으로 락발라드 거짓말, 밤이면 밤마다의 곡을 불렀다. 곽동현씨는 관객이 없는 무대에 처음 서본다면서 모두 떨어져있지만 랜선을 통한 음악으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세번째는 폭발력인 가창력의 손승연씨의 파워풀하고 감성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I'm not warrior, 물들어, 나에게 난 너에게 넌 등의 무대를 선보였다. 마지막 무대는 출연자 전원이 무대에 올라 GOD의 촛불 하나를 불르며 음악이 코로나19로 지친 도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한편, 전주세계축제는 20일 오후3시 폐막공연인 '전북청년 음악열정'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전시·공연
  • 최정규
  • 2020.09.19 19:55

[전북관광브랜드공연 뮤지컬 '홍도'] '정여립 대동사상' 설득력 부족

전북관광브랜드공연은 홍도와 자치기의 만남과 이별, 정여립의 대동사상 그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지난 27일 오후 4시 전북예술회관에서 전북관광브랜드공연 뮤지컬 홍도가 개막했다. 춘향(2013~2016)과 떴다 심청(2017)에 이은 세 번째 작품. 홍도는 판소리계 소설이 아닌 혼불문학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 원작이 전북의 역사적 인물인 정여립(1546~1589)을 다룬다는 점 등 그 자체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홍도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전주한옥마을과 조선시대 한양이 혼재돼 있다. 입체영상, 홀로그램과 같은 디지털 영상기법을 무대와 결합해 이 한계를 극복했다. 전체적인 작품 진행이나 연출도 전작들에 비해 매끄럽다는 평가다. 그러나 전북관광브랜드공연이라고 하기엔 무겁다는 게 중론이다. 전북도민들과 관광객들 누구나 저녁 시간대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전북관광브랜드공연의 취지를 상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업 취지와 작품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문제. 홍도는 원작의 홍도와 자치기의 사랑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정여립의 대동사상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작품 근저에 흐르는 정여립의 대동사상을 쉽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배우들의 미흡한 대사 전달력도 한몫했다.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주제와 전달 방식 모두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 입장에서 만들어 과연 관객이 보고 싶은 공연일까라는 의문이 든다며 위인전처럼 설득하려는 정서를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18.04.29 18:20

[새만금상설공연 아리울스토리3 '해적2' 보니] 불필요한 장면·음악, 극 흐름 끊어 역효과

아리울스토리 아리가 다시 여전사로 돌아왔다. 여주인공인 아리가 자신의 부족과 연인인 미르를 위해 해적 염왕과 맞서는 여전사로 변화한다는 설정으로 캐릭터의 이미지와 극의 개연성을 높였다. 그러나 무용극임을 고려하더라도 음악이나 조명 사용이 과다하고, 광대의 등장이 빈번해 극의 흐름을 끊는 등 아리울스토리3 해적1에서 제기된 내용이 또다시 반복됐다. 아리만 여전사로 돌아왔을 뿐 발전 없는 아리울스토리라는 지적이다. 10일 오후 2시 새만금 아리울창고에서 개막한 새만금상설공연 아리울스토리3 해적2(월영의 검)는 스토리를 다듬어 아리울 여왕인 아리의 여전사 이미지를 부각했다. 아리울스토리3 해적1에서 연인 미르의 여인으로 전락한 아리가 해적 염왕과 대립하는 아리울 여왕이자 여전사로 돌아왔다. 아리가 극 전면에 나서면서 의식을 통해 아리를 되살리는 데 대한 개연성을 확보했다. 퍼포먼스에 비해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지적을 보완한 셈이다. 출연자들의 역동적인 안무와 안정적인 연기는 기대를 충족시켰다. 특히 올해는 고증을 통해 복원한 백제 문양과 악기 등으로 시대적 배경을 명확히 했다. 백제 치미와 봉황문 등을 모티브로 북을 제작하고, 백제 5악기 중 하나인 완함과 백제 미마지탈 등을 사용해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그러나 아리울스토리에서 줄곧 지적된 음악과 조명의 사용 과잉, 광대의 과다한 출연 등은 그대로였다. 특히 극의 흐름을 끊는 광대의 등장도 여전했다. 개연성 없는 광대가 자주 개입해 공연의 집중도를 흐리고,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관광공연은 관광객을 공연에 참여시키고 즐겁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낳은 결과다.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막과 막 사이에 관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광대는 사족이라며 그 시간을 줄여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게 나을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도와 새만금개발청이 주최하고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는 새만금상설공연 아리울스토리3 해적2는 11월 17일까지 매주 화~토요일 오후 2시 새만금 아리울예술창고에서 공연한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18.04.10 20:07

[강명선 현대무용단 특별기획전 '여정']더 높이 도약하는 무용수의 몸짓

하늘로 솟아오르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바다가 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하늘이 보였다. 바다와 하늘이 뭉클거리며 만나는 지점에 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사부작거리는 모래를 딛고, 혹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모래가 구름이 되고 바위가 구름이 되고 파도가 구름이 되고, 그래서 결국 바다가 하늘이 되는 그 지점에 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춤을 추며 승천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안으로 숨어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나 보다. 여태껏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침잠해왔었다. 그녀의 작품에 매료된 시기는 그녀가 연출한 2007년 작 상사화(相思花)부터다. 그녀는 상사화에서 사랑을 노래했다. 사랑으로 만나 사랑으로 헤어지고, 믿음으로 만나 믿음으로 헤어지고, 소망으로 만나 소망으로 헤어지는 그런 행복한 만남을 가지고 싶다는 그녀는 상사화를 통해 슬픈 사랑을 노래했다.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엇갈리는 운명 탓에 슬픈 연인의 꽃으로 불리는 상사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의 운명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녀는 그 슬프고도 안타까운 꽃의 이야기를 연지홀 무대 곳곳에 풀어놓아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다시 보게 된 그녀의 작품에서 그녀는 이제 신들의 이야기를 채워 놓는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절대권력 제우스와 여러 신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질투, 분노, 슬픔 그리고 로망스를 표현했다. 레테의 강은 저승에 있는 다섯 개의 강 중의 하나로, 죽은 자는 명계로 가면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인간 세상의 모든 기억을 깨끗이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 사랑아! 레테의 강이라는 작품을 통해 역시 그녀는 궁극적으로 엇갈리는 인연과 만남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자 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사랑이 충만했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은 고독해 보였다. 그러나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그녀는 더는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간 내면의 세계에 천착해 사랑을 노래해 왔던 그녀가 앞으로 20년, 아니 더 오랫동안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길 바란다. 오늘 만난 그녀는 너무도 밝고 당당해 보였다. 거센 파도와 풍랑을 지지대 삼아 더 높게 도약하려는 무용수의 힘찬 몸짓을 보며 앞으로의 당당하고 멋진 강명선을 기대해본다. 그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향미 전주부채문화관장

  • 문화일반
  • 기고
  • 2018.03.04 20:19

【뮤직씨어터슈바빙 '결혼'·'전화'】'호남인의 오페라' 매력 발산

3월과 4월에 걸쳐 서울에서는 '제15회 한국소극장오페라 축제', '한국성악앙상블 NOI' 공연 등 의미 있는 소극장 오페라 공연이 정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오페라인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우리 오페라의 대중화 혹은 새로운 창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 우리 오페라의 건전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향의 도시 전주에서도 예술적 품위를 지키는 표현력 넘치는 소극장 오페라 공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라북도 지역을 위주로 활발한 오페라 작업을 펼치고 있는 뮤직씨어터슈바빙(예술총감독 이은희)의 제6회 정기공연이 전주 우진문화공간(14일)과 김제문화예술회관(20일) 무대에서 있었다. '결혼''전화' 두 작품이 무대에 오른 이날 공연은 제작 연출 지휘 기획 등은 물론이요 출연 성악가들까지 거의 모두가 지역 출신들로 이루어지던 말 그대로 '호남인에 의한, 호남인의 오페라' 공연이었다(참고로 이번 공연의 예술총감독 이은희는 공연 전 인사말에서 이번 공연을 '전라도의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러면서 이들이 호남 지역 오페라 발전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노총각을 위한 오페라' 라는 부제를 단 첫 번째 작품 공석준 작곡의 '결혼'(연출 : 조승철)은, 한 명의 여자(소프라노 송주희)와 한 명의 남자(테너 조창배),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남자 '집사' 역의 바리톤 김대현 등 3명이 '더 나은 현실을 꿈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나가고 있었다. 이날 주역 소프라노 송주희의 연주와 연기는 맑고 표현력 있었으며, 테너 조창배의 연주와 연기는 청량하면서도 젠틀했다.그리고 '집사' 김대현도 익살맞은 연기를 설득력 있게 이루어냈다. 남자의 진심을 안 여자가 사랑을 받아주고 면사포를 쓴 여인이 남자와 함께 행복한 퇴장을 하고 객석에서도 밝고 행복한 박수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인터미션 후 이루어진 '세상에서 제일 짧은 오페라'라고 하는 메노티의 오페라'전화'는 기계물질주의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오페라다.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이루어지고 루시(소프라노 신선경)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벤(테너 최재영)이 꽃과 선물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때 남자보다 선물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은 루시의 연기가 자연스럽다. "떠나기 전에 할 말이 있다"고 하는 벤의 노래가 시원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전화'가 온다. 그리고 루시가 전화기를 대고 크게 웃기도 하면서 수다를 떨며 노래한다. 루시가 맑고 수정 같은 목소리의 연주를 이룬 다음, 다시 이번에는 스스로 전화를 해 수다를 떤다. 그러면서 함께 2중창을 이룬다. 전화를 하며 이루는 아름다운 여인의 연주 소리와 '젠틀한 분노'에 휩싸인 남자의 연주 소리가 평화스럽게 들리면서도 객석에서는 엄청난 갈등을 느끼게 한다.지친 남자가 결국 떠나 버린다. 그러자 여자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하며 중얼거린다. 결국 이들은 다시 '전화 통화'를 하게 되고, '전화 통화'를 통해 서로 결혼 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면서 함께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2중창의 연주를 사랑스럽게 이루어 내며 막이 내린다. 테너 최재영의 연주는 맑고 청량하기만 했고, 소프라노 신선경의 싱그러운 고음 연주도 매혹적이었다. /송종건 ('무용과 오페라' 발행인)

  • 전시·공연
  • 김원용
  • 2013.04.23 23:02

【도립국악원 무용단 '파랑새'】민초들의 삶 '긴 여운' 남겨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훑은 기분이다. 80분으로 간추린 전북도립국악원의 무용단(단장 문정근)이 1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올린 정기 공연'파랑새'(연출 김정수). 내년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재조명된 이 작품은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면서 한발 두발 스러져간 민초들에게 다가섰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방대한 이야기를 아우르기 위해선 화려한 춤과 다양한 볼거리로 속을 채워야 했던 무용극은 동학농민운동 120년 역사를 가로지르며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이 응축된 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문학적인 무용가'라고 평가받는 문정근 단장의 무용극은 총 4개의 장과 2~4개의 소품('경')으로 이어붙였다. 1장은 이글거리는 가뭄과 폭압에 지친 민초들의 처연한 몸짓, 2장은 죽창을 들고 지축을 흔드는 농민들의 함성이 역동적인 몸짓으로 이어지면서 파괴하려는 직선과 끌어안으려는 곡선의 춤사위가 묘한 어울림을 빚어냈다. 클라이막스는 관군과 일본군이 피의 결전을 벌인 끝에 놓인 죽음의 들판, 3장에 있었다. 죄없이 희생당한 농민군의 진혼을 위로하기 위한 문정근 단장의 춤사위는 옷자락을 잡는 맵시마저도 다 춤으로 보일 만큼 꼼꼼한 바느질처럼 느리고 처연했다. 죽은 영혼들이 솟대를 들고 하늘로 향하는 몸짓에서 파랑새를 형상화한 4장에선 가슴을 에는 슬픔을 뒤로 한 희망의 울림이 전해졌다. 객원 단원으로 참여한 전주대·우석대 무용학과 학생들의 과감하면서 섬세한 동작은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경계에 놓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러나 남성 단원들이 부족해 전주대 태권도학과(지도 박동영) 학생들의 박력있는 춤의 무늬, 깃발 등의 소품과 반복되는 동작으로 강한 이미지를 살린 이번 무대는 온몸으로 저항하는 동학농민군의 애끓는 절규를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관현악단·창극단의 애절한 선율은 동학농민혁명의 상흔 속에 놓인 민초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긴 여운을 남겼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4.15 23:02

【황토레퍼토리컴퍼니 '꽃피는 봄 사월'】시대 읽기 '성공'…상상력 부족 아쉬움

황토레퍼토리컴퍼니(대표 김희식)가 한국사회의 익숙한 주제를 꺼내들었다. 바로 '광복 후유증'이다. 극작가 김영수(1911~79)의 대표작'혈맥'(血脈)을 재해석한 '꽃피는 봄 사월'(6일 오후 7시 전주대 예술관 JJ아트홀·연출 장제혁)은 반세기를 뛰어 넘어 다시 무대에 올랐지만 '시차'를 느낄 수 없었을 만큼 1945년 혼란기를 오롯이 살려냈다.서울 성북동 산비탈 방공호를 배경으로 방 한 칸 얻을 돈이 없어 잡초처럼 엉켜 사는 세 가족이 등장한다. 아들 거북이를 미군부대에 취직시킨 뒤 팔자를 고칠 꿈에 부푼 털보네와 의붓딸 복순이를 기생으로 만들기 위해 매질하며 밤마다 '신고산 타령'을 가르치는 옥매네, 징용갔던 일본에서 돌아온 담배장수 원팔이네에서는 고성이 끊이질 않는다. 사회개혁을 하겠다며 바깥으로 나도는 동생 원칠과 죽어가는 아내의 약값을 구하는 게 먼저라는 형 원팔은 서로 옥신각신하고, "기생만 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고 악다구니를 내뱉는 엄마와 "기생은 죽어도 싫다"며 버티는 복순이의 힘겨루기를 거북이는 고통스레 지켜본다. 남의 머리나 깎아주면서 복순이 같은 마누라를 얻길 바라는 소박한 갑득이와 약삭 빠르게 제 살 길을 찾다가 젊은 새 마누라에게 모은 돈을 몽땅 털리는 털보는 비루한 현실을 버티는 웅크린 초상이나 해학적인 재미를 전하는 역설적인 캐릭터. 영화 '도둑들' 등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 김강우는 털보로 과감한 상반신 노출로 웃음을 선물하는 등 능청스런 연기로 무게중심을 잡아줬고 젊은 배우들의 열연이 뒷받침 돼 공연의 완성도는 높았으나 진부한 시대극을 넘어서는 발칙한 상상력은 아쉬운 대목. 세 개의 방공호에 "거지 움막 같은 땅굴"을 표현한 김근종의 무대 디자인은 극에 사실감을 더했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08 23:02

【전주시립극단 창작극 '탈'】절망적 세상 향한 '뻔한 이야기'

지난 29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올려진 전주시립극단의 2013 레퀴엠'탈'(연출 류경호). 시작은 코미디 판타지물 같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상식대로 성실하게 살아온 경비업체 운전기사 김상식(백민기 역)이 주인공. 자동차 급발진으로 갑작스레 죽고 난 뒤 염라대왕에게 가서 있는 대로 '꼬장'을 부린 끝에 얻은 3일, 그는 자신이 꼭 살아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찾아야 하는 설정이었다. 본격적인 극은 이제부터. 급발진 사고를 운전자 과실로 돌리려는 자동차를 판 선배와 회사 본부장,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가족을 바라보면서 김상식은 억울하고 화만 난다. 그러나 주인공의 대사처럼 "절망의 끝에서 나를 부정한다는 것은 죽을 힘을 다해 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의 표현"인 내면을 묘사하는 대신 대리운전 기사, 생활고 비관 후 자살, 힘 있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언론 등 그를 둘러싼 사회적 부조리만 나열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주인공 김상식의 페이소스(Pathos·고통)를 드러내기 위해 탈을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그가 대학 시절 배웠던 탈춤 이야기가 끼어드는 설정이었다. 탈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끝내 복 받지 못하는 사회를 보여주기 위한 해학적 도구이자 얼기설기 꼬여 있는 등장 인물의 관계를 풀어주기 위한 장치가 아닌 관념적 유희로 설정된 것으로만 읽혔다. 조명과 소품을 적절히 활용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로 관객들의 몰입도는 좋았으나 사회적 문제와 주인공의 사연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쉬웠다. 차라리 자취도 없이 사라질 인간이 욕망의 덫에 얽매인 현실을 그렸다면 잔인함을 증폭시키는 삶의 현실에 모골이 송연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극작가 없이는 지역 연극이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견 극작가의 창작극이 계속해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는 게 전북 연극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증거라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겠다. 하지만 작품명으로 제시된 '탈'이 이중적 현대사회 혹은 현대인이 아닌 '쌩얼'로 살고 싶은 이들의 우울로 다가가기엔 또 다른 연금술이 필요해 보였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01 23:02

풋풋한 봄 내음 물~ 씬

관현악단 연주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을 무렵, 객석에서 박수가 잘못 터지자 지휘자는 손을 내리고 미소를 가득 지으며 객석을 바라봤다. '단원들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신뢰의 표시이자 박수를 잘못 친 객석에 대한 배려였다. 거의 끝나가는 듯 하다가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곡들로 객석의 박수는 불규칙하게 쏟아졌으나 단원들은 숙달된 연습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타이밍'을 거의 정확히 맞췄다. 6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만난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단장 류장영)의 신춘음악회'춘색만당'(春色滿堂)은 신선한 배반의 연속이었다. 일사분란한 팀워크와 탄탄한 합주력을 내세우면서도 팔색조 매력의 거문고 연주자 위은영·여류 가객 강권순·대금 명인 임재원씨의 화려한 개인기까지 곁들여져 창작국악곡이 아닌 정악이라는 다소 난해한 곡들로 자칫 지루하게 갈 수 있다는 기대를 단박에 무너뜨렸다.40여 명 남짓한 단출한 규모의 단원들은 마이크 없이 자신감 있게 우리 소리의 촘촘한 결을 내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풋풋한 봄의 역동성을 노래하는 '춘무'와 '이화춘풍 새봄이 들어'에선 맑고 경쾌한 음색을 얻어내다가 자연을 관조하는 우리 정가를 뒷받침하는 '청산별곡'과 '산천초목'의 곡 해석력은 단정하고 말끔했다. "밤새 감기가 들어 목이 안 좋다"던 박영순 창극단 부수석 단원의 '춘향가'에선 애달픈 춘향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너그러운 님(이몽룡)으로 변신했다가 적재적소에 추임새를 넣어주던 류 단장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다.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거문고 연주자 위은영 관현악단 수석 단원의 무대였다. 그가 연주한 거문고 협주곡 '강상유월'은 은은한 달빛 앙상블에서 거칠고 자유분방한 파격으로 이끌어 가속 붙은 오토바이를 타고 두 팔을 놓은 듯한 아찔함을 연상케 했다. 음향이 크지 않은 데다 울림이 짧아 비주류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거문고의 '무한도전'을 정면승부한 것이라 더욱 값졌다. 아쉬운 대목은 마지막 곡'울림'의 조합. 지루해할 지 모르는 객석을 위해 현란한 무용까지 곁들인 타악은 담백한 한정식에 톡톡 튀는 콜라를 내놓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로막았다. 쉽게 박수가 나오지만 굳이 만점 욕심은 내지 않는 모범생 같은 그런 공연이었다.

  • 전시·공연
  • 이화정
  • 2013.03.08 23:02

사포 말을 걸다 '바람결 그대' - 춤, 일상의 공간서 소리 없이 이뤄지는 관객과의 대화

졸졸졸 인공의 시냇물이 흐르는 '은행로 길'을 따라 걷다가 '어진 길'을 만나 열 발짝쯤 경기전 쪽으로 꺾어 들면 '공간 봄'이란 사각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열려진 대문을 지나 담벼락을 따라 한 줄로 뚫린 오솔길을 걸어 들어가면 화단처럼 꾸며진 작은 공터가 있다. 이 공터를 둘러싸듯 두 개의 건물이 'ㄷ' 자 모양으로 들어앉았고 그 틈새에 자그만 공간 하나가 더 마련되어 있다. 군데군데 카페테이블이 놓인 실내공간과 두 곳의 작은 공터, 사포현대무용단이 기획한 '말을 걸다'(Accost with Dance)의 다섯 번째 공연인 '바람결 그대'(9월22일)가 관객들을 만나는 공간이며 춤의 무대이다.실내 공간 안쪽에서 쟁반에 찻잔을 받쳐 든 여인들이 사뿐사뿐 걸어 나옴으로써 춤이 시작된다. 카페에 미리 자리 잡고 앉은 관객들과의 교감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창밖에서는 청바지차림 소녀들이 경쾌한 율동을 시작한다.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의 틈새를 골고루 누비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의 시선도 함께 움직이고 그들 사이에는 말없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9명 무용수가 함께 혹은 번갈아 추는 군무와 박진경의 솔로, 강정현과 최은봉의 듀엣, 이어지는 3인무 등에 관객들은 점점 몰입해간다. 청바지의 율동이 아이돌 세대에 대한 말 걸기라면 박진경의 솔로는 하나뿐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여인의 순정이며 상사화 앞 벤치에 앉아 등을 맞대고 추는 감각적인 듀엣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볼 수 없는 상사화(相思花)를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고 비좁은 공간에 모여앉아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숨죽이며 주시하는 관객들은 무대의 일부를 구성할 뿐 아니라 춤추지 않는 또 다른 출연자들이다. '난초 화분의 휘어진 / 이파리 하나가 /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 잔잔한 기쁨의 / 강물이 흐른다.' (나태주의 '기쁨')시인이 난초 잎에서 발견한 잔잔한 기쁨처럼 무용수와 관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기쁨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김화숙(사포 예술감독, 원광대 교수)이 의도한 대로 춤을 통한 관객과의 대화가 극장무대가 아닌 일상의 공간 속에서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김화숙은 뿌리 깊은 호남의 예술적 DNA를 바탕으로 시정(詩情) 넘치는 감성적 춤을 표방하면서도 강한 역사성과 사회성을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춤 캐릭터를 가졌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모티브 삼은 '그해 5월', '편애의 땅', '그들의 결혼' 등 3부작과 '달이 물속을 걸을 때',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등 수많은 창작품을 남기고 있는 그를 나는 '신 서정주의 감성언어의 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포, 말을 걸다'란 일관된 주제 하에 5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감하는 다섯 번째 작품인 '바람결 그대'를 보면서 그의 춤 세계가 관객 속으로 점점 더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 사포(SAPPHO)'란 이름이 본래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 / 무용평론가 이근수(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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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7 23:02

"B급 스타일 웃기는 광대도 필요" 광대의 노래 '동리, 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대박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관심을 보인다. '강남스타일'이 있다면, '전주 스타일'은 무엇일까. 더불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만들어내야 할 '소리 스타일'은 어떠해야 할까? 2012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기획한 광대의 노래 '동리, 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14~1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연출 지기학)는 앞의 궁금증과 관련해 뜻깊은 작품이었다. △ 동리 스타일 vs 강남 스타일남성에서 여성으로, 소리꾼을 확대한 사람이 동리 신재효(1812 ~ 1884). 아전에서 양반으로 구경꾼을 확대한 사람도 동리 신재효다. 그는 이른바 그 시대에 '동리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젠 '강남 스타일'. 이 노래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하자. 스스로 'B급'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이젠 '(지)기학' 스타일연출자 지기학의 작품에는 지기학이 있다. 문순태의 소설 '도리화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전체적으로 A급이었다. 사무친 그리움을 억압하는 인물이 중심축. 오동과 같은 존재인 신재효(김대일 역)가 봉황처럼 찾아왔으면 하는, 가슴에 품은 가공인물 진채선(방수미 역) 봉선(정승희 역)이 극을 이끌어간다. 알려진 이야기 속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서사 구조도 탁월했고, 판소리로 출발해서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무대 활용 역시 유연했다. 소리에 대한 무한한 열정,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 기회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웠다. 이런 '(지)기학 스타일'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기학 스타일'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축제 속의 작품으로는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극을 생기발랄하게 이끌고자 했던 정민영(풍각쟁이)은 구원투수처럼 비춰졌다. 판소리가 충분히 '발라드'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한 공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무대였다. 영화 '쌍화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음악감독을 했던 김백찬은 대중적 감수성을 알고 있었다. 황성현(타악), 허진(피리)과 좋은 트리오를 보여줬다. 이런 형태의 소극장 판소리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들었다. △ 소리축제는 B급 같아 뵈는 A급 스타일로 이번 작품은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만나는 '광대의 노래'라는 이름의 세 번째 작품이다. 튼튼한 구성에 깔끔한 연출이 빛을 발했다. 송순섭 명창이 극에 무게감을 실어주었다. 그렇다면 소리축제에서 만나는 '소리 스타일'은 어떠해야 할까? 내 생각엔, 'B급' 같아 보이는 'A급'이었으면 한다. 욕망에 대한 억압보다는, 세상에 조화하는 아름다운 욕구였으면 더욱 좋겠다. 대중은 진지함보다는 진솔함에, 억눌림보다는 솟구침에 반응한다. 무거운 것을 무겁게 표현하는 것에 박수를 치는 수효는 점차 줄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축제를 매개하는 작품에선 더욱 그렇다. 돌이켜보면 판소리 또한 울음(비장)과 마찬가지로 웃음(골계)이 절반의 영역이 아닌가! 소리축제의 앞으로 '소리 스타일'은 처절한 외침이나 사무친 그리움은 조금 절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설픈 광대일지라도, 웃기는 광대를 만났으면 좋겠다. 적어도 축제에선 그랬으면 좋겠다. 소리판에서도 'B급 스타일'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윤중강(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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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7 23:02

'강수진과 친구들' '말을 걸다 Ⅳ - 아! 거기 당신'…'몸'은 최고의 예술

■ 춤 넘는 내면연기의 몸짓 '강수진과 친구들'무용은 가장 솔직한 예술이다. 사람의 '몸'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것을 표현한다. 지난 주말 주목할 만한 두 공연, '강수진과 친구들'과 김화숙 & 현대무용단 사포(대표 김자영이하 사포)의 '말을 걸다 Ⅳ - 아! 거기 당신'은 인간의 몸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는 것을 수많은 미술 교과서에서 본 누드화보다 훨씬 와닿게 해줬다. 우아한 강수진의 무대는 한국의 자존심, 매력적인 사포 카페 공연은 전북의 자존심이었다.장밋빛 검은 보석의 매혹. 짙고 까만 눈썹 밑으로 입을 다문 채 살짝 반기는 듯 그윽한 미소는 말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것을 말해줬다. 사랑의 정점에도 있어봤고, 사랑의 나락에도 떨어져 봤음직한, 아파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모호하고 비밀스런 표정. 미천한 신분의 여성 마르그리트와 귀족 청년 아르망의 애절을 사랑을 그린 '까멜리아 레이디'나 잃어버린 첫 사랑 티티아나와 오네긴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오네긴'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무용수)은 매혹 당한 존재의 치명적인 슬픔을 보여줬다.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이인권)과 전주MBC(사장 전성진)가 지난 2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올린 '강수진과 친구들'. 공연 전날 리허설에서 만난 강수진은 창원 공연을 마치고 전주에 오자마자 몸을 풀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섰다. "지역 관객들에게도 무용의 시야를 넓혀 드리는 게 제 임무 같아요. 클래식과 네오드라마컨템포러리 발레, 현대무용까지 다양하게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무대에서의 강수진은 느리지만 우아했다. 마흔 다섯의 나이에 줄리엣(16세)을 소화한 강수진은 '파드되'(남녀 2인무)에서 애절함으로 가슴을 붙드는 움직임을, '오네긴' 의 3막 파드되(남녀 2인무)에서는 티티아나가 오네긴의 사랑을 거부하는 차고 매몰찬 티티아나의 표정 연기로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 객석에서의 탄성과 박수는 길었다. 강수진이 선택한 LDP무용단의 'No comment Ⅱ'는 격렬했다. 무용수들이 전력질주하다 쓰러지고 뒹굴고 발을 구르는 모습을 통해 우리 안에서 몸부림치는 진실 혹은 거짓을, 속수무책의 자유로움을 떠올려보게 했다. 미국 워싱턴발레단의 무용수 채지영과 윤전일, 어린 무용수 윤 별 박소연 홍호림의 연기 또한 성장한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을 보여주는데 손색이 없었다. "한국 발레가 이만한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커다란 축복이에요. 언젠가 내게도 '그 날'(은퇴할 날)이 오겠지만, 내 몸에 쌓인 발레 언어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은퇴는 내 춤에 에너지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 날로 내려올 거예요."막이 내려갈 무렵 강수진은 다시 웃었다. '그날'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했다.■ 공간의 새로운 해석사포 카페 무용 '말을 걸다'지난달 사포 공연을 마친 김화숙 원광대 교수는 "다음달은 그냥 가자"고 했다. "또 어떻게 각색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서울로 돌아온 그날 저녁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방학도 없이 주말마다 전주행 기차 안에서 고민 끝에 내놓게 된 사포의 '말을 걸다' 네 번째 시리즈 '아! 거기 당신'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야외 공연은 음악으로 압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선곡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21일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에서 열린 이번 공연에서 11개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쇼팽의 '6월에는', 비제의 '진주 조개잡이' 중 '귀에 익은 그대 음성', 에디뜨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 등이 펼쳐지면서 무용수들이 카페의 공간을 새롭게 해석했다. 여성 무용수 셋, 여성 무용수 다섯이 카페의 서로 다른 공간에서 손짓하며 '안녕하세요'를 건네는 장면을 시작으로 가깝고도 목마른 사랑의 그리움을 풀어냈다. 저절로 눈이 가는 끌림, 마음이 얹혀 지는 쏠림, 가닿고 싶어 넋이 나가는 홀림의 몸짓. 그러나 결국 이뤄지지 못한 사랑 앞에선 절망의 몸짓까지 사포는 모든 종류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 나 자신을 위한 사랑일 수도 있다. 상징적이면서 표현력 강한 춤을 보여준 사포의 이날 공연은 크고 웅장한 무대가 아니라, 문턱을 낮춘 카페에서도 무용을 충분히 열린 무대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값진 시도. 다만, 다음 공연'등을 기대요'(8월25일)를 제대로 관람하고 싶다면, 좋은 자리를 '찜'해 둘 필요가 있을 듯. 공연 도중 무용가와 눈이 마주쳤다면, '씽긋' 웃어주는 센스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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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2.07.23 23:02

"산다는 게 마냥 괴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지…" 고달픈 달동네, 절절한 '희망가'

극단 사람세상이 세번째로 무대화한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열패자, 속칭 '루저'들이다. 안쓰럽고 딱한 삶이건만,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희극적이다. 연극은 세 인물의 숨겨놓은 사연을 천천히 그러나 코믹하게 풀어낸다. 압구정동이 보이는 서울 달동네 옥수동에 사는 김만수(편성후 역)는 사기 도박으로 승승장구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처지. 감옥에 10년 이상 썩고 나왔더니 아내는 새 삶을 찾아 떠났고 버려진 아이는 백혈병으로 이 세상을 등졌다.오토바이 수리공으로 알뜰살뜰 모은 돈을 사기 도박으로 날린 박문호(백호영 역)는 도박판을 전전하며 '결정적 한 방'만을 노린다. 만수와 시시건건 시비가 붙던 문호는 만수의 전직 이력을 알게 된 후부터 만수에게 '독심 화투술'을 전수해달라며 생떼를 부린다. 자신을 겁탈하려 든 새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빼내오기 위해 돈을 버는 조미령(정해선 역)은 밤무대 가수의 삶이 버겁기만 하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 손톱 밑에 든 가시 때문에 아파 죽겠다며 '킹 오브 만신창이'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인다. 하지만 연극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각자 상처를 안고 사는 만신창이지만 서로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온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꿈과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꾸역꾸역 살아갈 힘을 준다. 후줄근한 노년의 열패감을 능청맞게 연기한 편성후씨와 청춘을 다 바쳐 열망한 도박이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내면 심리를 잘 풀어낸 백호영씨는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도 하지만, 가슴을 먹먹하게도 했다. 막무가내 문호를 잘 다독여 진실한 사랑으로 이끄는 정해선씨의 연기도 주목할 만 했다. 다만 '늙은이' 만수의 연기에는 좀 더 노련함이, 뻔한 캐릭터에 빠지지 않기 위한 미령의 개성 넘치는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희극작가 김태수의 원작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가족 신화(?)에 안주하는 결말로 이어진 것도 조금은 진부하다. "한강아! 산다는 게 마냥 괴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지. 그래서 가슴 속에 저마다 한 가지씩 희망이란 걸 품어보는게 아니겠어, 그런데 니미랄 것, 왜 이렇게 눈물이 자꾸 난다냐? 왜 오늘 같은날 지랄맞게 여편네 생각이 자꾸 나지…."만수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떤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다소 뻔한 이야기를 펀(fun)하게 풀었다.전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군산 극단의 좋은 작품을 고급화된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젊은 연출가전'을 기획한 우진문화재단에도 박수를 보낸다. △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 15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3·7시, 일요일 오후 4시. 문의 063)272-7223. woojin.or.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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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1.13 23:02

사랑… 격정… 가슴 저미는 춤사위

'예술가는 작품 안에 있으며, 예술가가 스스로를 아는 것도 작품 안이다.'한국무용가 김애미를 따로 만난 적도, 짧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하지만 애미아트(대표 김애미)의 '박색설화'(28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와의 조우는 짧지만 강렬했다. 20분 늦게 당도한 공연장. 1부에서 김애미는 아버지 금파 김조균 선생의 '호적 구음 살풀이'를 서정적인 몸짓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농악과 구음 등을 담은 전라도 춤의 정수가 담긴 살풀이는 그에 의해 곡선의 미학이 돋보였다. 부채와 바람, 작은 북이 어우러진 고구려 춤극 '요령고무'(天神鈴鼓)는 여성이 소화하기가 힘든 웅장한 춤사위였으나 맥박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동양적 정신을 갖되 움직임은 현대적 미학이어야 한다는 안무가 국수호가 연출해낸 춤의 무늬는 객석을 압도했다. 이날 무대의 백미는 춘향이 추녀였다는 '박색설화'. 이도령에게 반하고도 얼굴이 못나 주저주저하는 춘향(김애미 역)을 위해 월매는 용모가 빼어난 향단이로 하여금 이몽룡(최태헌 역)을 유혹하게 한다. 뒤늦게 월매에게 속은 걸 안 몽룡은 배신감으로, 춘향은 그리움으로 멍울 진 가슴을 적셨다. 춘향은 손짓으로, 발 디딤으로 몸짓 하나하나에 눈물·환희·이별을 토해냈다. 춘향과 몽룡의 순애보로 올해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겨울이 이날만은 비켜난듯 했다.사랑의 떨림과 격정, 아픔 등을 다양한 층위로 살려낸 음악과 현대적인 무대 디자인, 화려한 의상 역시 조화를 이뤄내면서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다만 박색설화를 연기하는 춘향이 너무 예뻐서 감정 몰입을 떨어뜨린다는 점이 아쉽다. 더 욕심을 내자면 마음 속 불덩이들을 다스리기 보다는 평화롭게 비워내는 법을 단련해도 좋을 것 같다. 전설이 대물림 돼 만날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쌓여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역사가 쌓여야 전설이 생기고, 은퇴한 전설이 말하는 오늘을 혹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그의 내면 연기가 더욱 농익어서 전북 무용의 또다른 전설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2011 무대공연 제작지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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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1.12.30 23:02

클래식의 깊은 감동그리고 묵직한 여운

지난 13일 진안문화의집에서 펼쳐진 '신나는 예술여행 희망 나눔 콘서트'는 모처럼 농촌을 찾은 클래식 향연에 푹 젖어 깊은 감동을 나눈 아름다운 밤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이 음악회는 대중음악에 비해 거의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의 무대를 제공한 점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클래식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벽을 깨트렸고 진정한 클래식의 힘과 가치가 대중음악에서 보다 더 값진 향기가 있음을 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기회였다.듬직한 남성 성악가 8인의 장쾌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연신 앙코르와 브라보를 외쳤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3중주가 엘가의 '사랑의 인사' 파헬벨의 '캐논'을 정교하고 세련된 앙상블을 보이자 고급스러운 음악에 감성을 여는 모습은 참으로 진지했다. 200여명의 관객들이 진행되는 음악의 다양성을 호흡하면서 점점 깊숙하게 음악에 젖어드는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변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실감케 했다.연주가 계속될수록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테너 박인수 백석대 음대 석좌교수가 불러 히트한 '향수','울산 동백섬'을 그린 노래가 불려지자 감상에 푹 젖고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는 모습이었다. 처음 듣는 카운터 테너가 헨델의 파리넬리에 나오는 '날 혼자 울게 내 버려주오'와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를 묘한 중성으로 화려한 '콜로라투라'(기교로 장식된 선율)으로 부르자 난생 처음 듣는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우주호 성악가는 그 넉넉한 품으로 조두남의 흥겨운 '산촌'을 불러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이 단체의 리더인 우 성악가는 단순히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차원을 벗어나 우리의 농촌이 정신적인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계몽이 필요하고 클래식에 담긴 창의력을 통해 발상의 전환 기회로 삼고 싶다며 이제 도농간의 시·공간의 벽은 허물어졌기 때문에 시급한 것이 '문화수혈'이라며 사명감을 갖고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탁계석(예술비평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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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1.12.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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