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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의 불행은 누구 책임인가

크리틱 톡 '까미유 클로델'- 평론가 서동진

▲ 브루노 뒤몽 감독

줄리엣 비노쉬가 등장하는 '까미유 클로델'(감독 브루노 뒤몽·2013·이하 '까미유')을 선택한 이유는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했던 '까미유 클로델'(감독 브루노 뉘탱·1988)와 비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거두절미하면 풍부한 내면 연기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 줄리엣 비노쉬가 카미유의 말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30일 전주CGV에서 만난 '까미유'는 무려 24살을 극복한 로댕의 연인이자 천재 조각가와의 소통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크리틱 톡'에 나선 영화평론가 서동진(추계예술대 교수)은 대신 브루노 뒤몽 감독이 제시한 '까미유'가 애초부터 소통을 차단한 영화라는 혐의를 해명하고 미카엘 하네케 감독과 비교해 새로운 '윤리적 시험지'를 내놨다고 평가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알던 까미유와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1915년 정신병원에 감금된 까미유는 '로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고통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동생 폴은 여기서 제발 꺼내달라는 까미유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가면서 누나를 감금시킵니다. 왜 그럴까요."

 

애당초 감독은 "까미유와는 비슷한 그러나 또 다른 폴의 광기에 매료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까미유의 광기를 예술가의 기질로 간주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됐을 동생이 굳이 돈을 줘가며 누나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아이러니에 관해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왔다. 결국 폴이 '선택받은 자만이 신에게 구원 받는다'는 종교 교리를 찾아 까미유를 이해했던 것처럼 까미유가 자신에게서 불행의 씨앗을 찾길 바랐다는 것으로 대강의 결론이 모아졌다.

▲ '까미유 클로델'의 한 장면.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파토스(Pathos·예술의 주관 감정적 요소) 윤리학과 브루노 뒤몽 감독의 에토스(Ethos·예술에 담긴 도덕 이성적 특성) 윤리학을 비교해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친 원인은 때때로 찾기 어렵다는 파토스가 하네케의 영화라면, 기어코 찾고야 말겠다는 에토스가 브루노의 영화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 하지만 서동진은 30년 넘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했던 까미유의 인생을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라는 질문은 던져도 답은 찾지 못한 영화라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영화는 까미유의 절망적인 표정과 생의 희로애락을 읽을 수 없는 정신병자들의 텅 빈 표정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면서 객석에 불편한 화두를 던지지만 마지막 까미유의 얼굴에서 그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어서다. 우리가 알던 까미유와의 작별은 그래서 낯설고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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