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2 00:30 (목)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일반기사

추석단상

진홍한 국생산성본부 회장

1주일 후면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매년 어김없이 추석은 찾아오건만 세월이 흐르면서 추석의 의미도 시간의 무게와 함께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나의 기억에 아른거리는 먼 어릴 적 추석의 모습은 새 옷, 새 신발에서 시작된다. 어머니는 일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에 새 옷을 사주셨다. 추석 전날쯤 전주 남부시장에서 사 오시는 보따리에는 우리 4남매의 옷과 신발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 옷을 입혀 보면서 미소 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옷 선물을 받던 우리보다 더 흐뭇해하시던 마음을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고, 송편과 평소 먹지 보지 못했던 음식에 즐거워했던 기억도 새롭지만, 추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새 옷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너무나 쉽게 새 옷을 사는 요즈음 아이들은 추석 때 무엇에 가슴 설레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또 하나 어린 시절 추석을 생각할 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영화관이다. 성묘에 빠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영화를 보러 가려고 이리 저리 궁리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새 옷과 영화, 이 두 가지가 어릴 적 추석을 돌아볼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인 것이다. 또한 추석 둥근 보름달을 보고 남몰래 소망을 빌었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교 때일 것이다. 중학교까지는 무시험으로 진학하고 고등학교부터 입학시험을 보는 시절이었으니까. "추석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덧없는 말에 의지하여 추석날 늦은 밤에 혼자 나와 달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아도 그때의 간절함만은 지금도 느껴진다.

 

대학 시절부터 추석의 모습이 서서히 변화되었던 것 같다. 생활의 근거지는 서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추석은 부모님이 계신 전주에서 보내게 됨에 따라 추석은 쉽지 않은 명절이 되었다. 기차표나 고속버스 승차권을 구하기 위하여 밤새워 기다리기도 했고, 승용차로 10시간 넘게 운전하여 집에 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전주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오고 가면서 운전하는 시간이 많았던 적도 적지 않았다. 특히 결혼 후에는 추석때 집에 가는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일으킨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몸이 약한 아내는 추석때 전주를 다녀오면 몇일을 끙끙 앓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석 귀향을 미룰 수는 없었다. 이렇게 추석이면 으레 집으로 향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모님과 추석을 같이 보내고, 성묘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물론 가장 큰 이유일 것이지만, 힘든 타향생활을 벗어나 고향의 품에서 위안을 받고자 하는 바람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친구들, 다정한 친척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 익숙한 이웃 등 이해관계에 억매이지 않는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사에 피곤해진 심신을 달래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추석의 의미도 점차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친척 어른분 들은 돌아가셔 안 계시고, 전주에 부모님이 살고 있지 않은 친구들은 추석이 되도 전주에 오지 않는다. 따뜻한 정을 같이 나눌 사람이 하나 둘 사라지니 전주에 와도 옛날 같은 고향의 내음을 맡기 쉽지 않다. 내가 간직해왔던 소중한 것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추석 귀향이 없었다면 이제까지의 타향에서의 30년 넘는 삶이 얼마나 삭막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래서 옛날의 정겨웠던 추석 귀향을 다시 찾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정성을 쏟아야 한다. 어머니 안 계신 추석을 처음 맞이하시는 아버지의 쓸쓸함을 달래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또 그 동안 못 보았던 친구, 친척을 찾아보아야겠다. 가능하면 내가 어릴 적 살던 추억이 깃든 곳도 천천히 걸어보겠다. 내 삶의 밑바탕이 되어준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면서 종반부로 들어선 인생의 다음 설계를 해 보아야겠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