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한 국생산성본부 회장
대학 시절부터 추석의 모습이 서서히 변화되었던 것 같다. 생활의 근거지는 서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추석은 부모님이 계신 전주에서 보내게 됨에 따라 추석은 쉽지 않은 명절이 되었다. 기차표나 고속버스 승차권을 구하기 위하여 밤새워 기다리기도 했고, 승용차로 10시간 넘게 운전하여 집에 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전주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오고 가면서 운전하는 시간이 많았던 적도 적지 않았다. 특히 결혼 후에는 추석때 집에 가는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일으킨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몸이 약한 아내는 추석때 전주를 다녀오면 몇일을 끙끙 앓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석 귀향을 미룰 수는 없었다. 이렇게 추석이면 으레 집으로 향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모님과 추석을 같이 보내고, 성묘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물론 가장 큰 이유일 것이지만, 힘든 타향생활을 벗어나 고향의 품에서 위안을 받고자 하는 바람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친구들, 다정한 친척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 익숙한 이웃 등 이해관계에 억매이지 않는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사에 피곤해진 심신을 달래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추석의 의미도 점차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친척 어른분 들은 돌아가셔 안 계시고, 전주에 부모님이 살고 있지 않은 친구들은 추석이 되도 전주에 오지 않는다. 따뜻한 정을 같이 나눌 사람이 하나 둘 사라지니 전주에 와도 옛날 같은 고향의 내음을 맡기 쉽지 않다. 내가 간직해왔던 소중한 것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추석 귀향이 없었다면 이제까지의 타향에서의 30년 넘는 삶이 얼마나 삭막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래서 옛날의 정겨웠던 추석 귀향을 다시 찾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정성을 쏟아야 한다. 어머니 안 계신 추석을 처음 맞이하시는 아버지의 쓸쓸함을 달래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또 그 동안 못 보았던 친구, 친척을 찾아보아야겠다. 가능하면 내가 어릴 적 살던 추억이 깃든 곳도 천천히 걸어보겠다. 내 삶의 밑바탕이 되어준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면서 종반부로 들어선 인생의 다음 설계를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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