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남에게 베풀고 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그 유언을 지키며 살련다
추석이면 제일 생각나는 분이 어머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다는 자괴심이 언제나 가슴에 사무친다. 나름 할만큼 했다는 생각도 하지만, 어머니가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비하면 내가 한 게 얼마나 될까?
9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남에게 베풀고 살라는 큰 가르침을 주셨다.
어머니는 매년 쌀 100가마를 동네에 내놓으셨다. 한번도 빠트리지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면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돌아가시면 그 쌀이 없어질 것같아서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동네사람들은 모두 나와 상여를 매고 만장을 드는 등 따뜻하게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은혜 갚겠다고 나서주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죽더라도 쌀 100가마 주는 것을 그치지 말라"고 유언 하셨다.
내가 그 유언을 지키고 있다. 죽을 때까지 그 유언을 지킬 생각이다. 내가 죽으면, 내 자식들이 그 유언을 지킬 것이다.
사람은 경제적으로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다. 물질본위의 자본주의사회에서 남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들 자기 노력으로 벌어놓은 게 아깝지 않으랴. 누군가 말했다. "돈 있다고 누구나 베푸는 건 아니다"라고. 베푸는 것을 감히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구니오 나카무라,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의 대통령이다. 1996년 중반 팔라우에 갔을 때 만났다. 대화중 어머니가 95세라고 얘기하니, 그가 놀라서 "우리는 70 밖에 못사는데, 95세에도 살아계신다고요? 한번 뵙고 싶다"고 했다.
1997년 6월 내가 작사하고 노래 부른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노래비 제막식 때 그를 초청했다. 처음에는 참석하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못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15일 제막식에 참석하려면, 13일에는 비행기를 타야 되는데, 하필 그날은 '13일의 금요일', 움직여서는 안되는 불길한 날이었다. 못오겠구나 했는데, 15일 아침 7시에 도착하면 되겠느냐는 연락이 14일에 왔다.
그는 15일 아침에 도착해서 정부가 내준 방탄리무진으로 2시간만에 정읍에 도착했다. 12시의 제막식에 참석해서 나와 함께 테이프를 끊었다. 덕분에 제막식은 더욱 성대하게 끝났다. 작은 나라라고는 해도 쉽게 몸을 뺄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에 그런 정성을 보여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나이 들수록 어려진다고 했던가? 추석 같은 명절이 오면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내가 다못한 효도를 다른 사람들은 꼭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은 남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은 남에게 선한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게 내 믿음이다. '효',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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