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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버려둬라, 겨울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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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후 도심 가로수 모습이 확 달라졌다. 밑동에 멋진 겨울옷을 걸쳤다. 줄기와 가지에는 전구 달린 전깃줄이 칭칭 휘감겼다. 알록달록 화려한 뜨개옷은 언뜻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사람들의 정성으로 보일 수 있다. 맞다. 도심 가로수의 겨울옷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볏짚 거적에서 비롯됐다. 주로 병충해 예방이 목적이었고, 한파에 약한 일부 수종에서는 보온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무에 기생하는 해충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따뜻한 볏짚에 몰려들어 월동하는 습성을 이용한 것으로, 봄이 되면 이 볏짚을 벗겨내 불태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볏짚 거적이 어느 때부터인가 고급 직물로 바뀌었고, 여기에 화려한 무늬와 글자까지 더해져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달라진 겨울옷의 목적이 의문이다. 봄철에 벗겨내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고 재활용 방안까지 나오는 걸 보면, 병충해 방지보다 도시 미관과 분위기 조성이 더 큰 목적인 게 분명하다. 사실 겨울철 가로수 보호가 목적이라면 겨울옷보다는 거리 제설제 살포로 인한 염분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볏짚 차단막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없다. 폭설이 내렸는데도 예년에 종종 눈에 띄던 제설제 차단막은 찾아볼 수 없다. 도시 미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일까?

대신 눈에 확 띄는 것은 칡넝쿨처럼 감아 올라가 바짝 마른 겨울나무를 옥죄고 있는 전깃줄과 전구다. 세밑이 되면 인파가 몰리는 시내 주요 거리에 이렇게 장식용 전구로 휘감긴 가로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연말연시 아름다운 경관조명을 연출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민들에게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선사하겠다는 취지다. 각 지자체가 너도나도 가로수 조명 설치에 나서고 있고, 민간기업에서도 자체 예산으로 건물 앞 가로수를 장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과 단체에서 더 적극적이다. 이제는 전구 크기도 장식용 꼬마전구가 아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큼지막한 전구가 가지 끝까지 얼기설기 연결돼 밤새 환하게 불을 밝힌다.

화려한 도시 야경을 만들어내는 경관조명의 효과는 분명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조명 설치 대상이 꼭 살아 있는 가로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껏 도시 경관조명에 무관심했다가 설치가 쉽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가로수 조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무는 내버려둬도 거뜬히 겨울을 난다. 잎사귀를 모두 떨궈낸 앙상한 가지에도 여전히 생명의 에너지가 꽉 차 있다. 간섭하지 않으면 극한의 환경도 잘 견뎌낼 수 있고, 또 견뎌왔다. 인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말이다. 그런데 한밤중 강한 인공조명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가로수를 줄줄이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어 멋진 야경을 연출하겠다는 계획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 아닌가. 그래도 보기 좋으면 그만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많이 불편하다. 그냥 내버려둬라. 제발.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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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겨울옷 #조명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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