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하동에서 부족할 것 없는 부농의 딸로 태어난 소녀는 일본군의 공출에 맞서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마을 이장은 일본의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소녀가 도착한 곳은 일본이 아닌 인도의 자카르타, 일본군 부대였다. 그의 나이 꽃다운 열다섯 살이었다. 참혹한 현실 앞에 소녀는 절망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고통스러운 나락에서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죽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소녀는 아편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살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고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난 뒤. 소녀는 천애고아가 됐다.
애니메이션은 2004년 2월 26일 여든한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정서운의 구술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가 살아생전에 남겨놓은 기록이다.
정서운. 그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해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다. 1995년 북경 세계 여성 대회에도 참가해 위안부의 삶을 증언했으며 이듬해에는 미국 등지에서 종군 위안부에 대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국민 기금 반대 올바른 전후 청산을 위한 일본 순회 집회’에도 나섰다. 그의 용기로 인해 비로소 한 많은 삶을 가슴에 삭이고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려온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스물두 돌을 맞았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에 맞춰 시작한 시위는 이날까지 1,108회가 진행됐다. 시위 역사상 가장 긴 시위다. 1100회가 넘는 동안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다. 고령의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애절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던 할머니들은 239명. 지난해만도 4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생존한 할머니는 이제 56명뿐이다. 죄스러움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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