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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역사 '파리 장서운동' 재조명

도내 4명 등 유림 137명 1919년 만국평화회의에 조선독립 호소 청원 제출 / 고창서 29일 기념비 제막

▲ 1919년 3월 프랑스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된 파리장서 문건.

‘삼십일년전 이 땅 겨레의 붉은피로 물들인 기미독립선언이 한낱 전설이 아니요, 우리의 선열이 바친 거룩한 무기 없는 독립전쟁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사실이 오랫동안 내려오는 가운데 후손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진 사실도 있다. 우연히 세상에 알려져 새로운 화제를 던지는 동시에 삼일역사에 새 사실을 첨가하게 됐다.’ <동아일보 1950년 3월 1일, ‘삼십삼인(三十三人) 뒤이은 십이지사(十二志士)> 1919년 3·1운동을 다룬 당시 동아일보의 기사에서는 역사의 뒤안길 속에서 잊혀진 12인의 독립지사가 소개됐다.

 

이들은 3.1운동이 일어났던 그해 유림 최대 독립운동인 ‘파리장서운동’을 이끈 주역들이다.

 

최근 3·1절을 전후로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 할머니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망언에 대해 규탄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12지사(志士)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파리장서는 1919년 3·1운동 직후 전국 유림대표 곽종석(1864~1919)·김복한(1860~1924) 등 137명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제1차 유림단’ 사건으로도 불린다.

 

당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처리과정에서 한국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고, 친일파 김윤식을 유림대표로‘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독립불원서’를 일본정부에 제출토록 했다.

 

이에 뜻 있는 유림들은 일본 정부의 폭압적인 통치와 수탈을 해외 각국에 폭로하기 위해 붓을 들어, 독립불원서 내용을 반박하는 동시에 민족독립의 정당성을 알렸다.

 

전북지역에서는 고창 출신인 고순진(1863~1938)·고예진(1875~1952) 형제, 고석진(1856~1924), 고제만(1860~ 1942) 등 4명이 참여했다.

 

이 중 12지사로는 고예진, 고석진 선생이 꼽힌다.

 

이들이 작성한 파리장서는 같은 해 일어난 3·1운동의 기미독립선언서와 쌍벽을 이루는 독립운동이지만, 3·1운동에 가려져 여태까지 일반국민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등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지역사회, 학계에서 파리장서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해지면서 관련 연구 및 추모 사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현재 고창에서는 송천(松川) 고예진 선생의 손자인 고석상씨(75)가 선생의 생가에서 생활하며, 선생의 뜻을 기리고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1833~1906)의 제자이기도 한 고예진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 직후 면암과 함께 궐기, 항일의병투쟁에 나서기도 하는 등 행동하는 유학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후손인 고석상씨는 “(할아버지가)파리장서 이후 옥고를 치르는 등 심한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가산을 털어 항일의사들에게 활동자금을 지원하고, 창씨개명에 맞서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고 회고했다.

 

파리장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성균관 유교학술원 유풍연 교수는 “(파리장서는)한일합방의 부당성과 일제의 잔학상을 세계만방에 폭로했던 유림계 최대 항일 의거”라며 “여기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이후에도 독립운동에 헌신, 일제에 맞서왔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3·1운동이 대내 투쟁을 1차 목적으로 했다면, 파리장서운동은 세계만방에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나선 국제적인 항일운동”이라고 말했다.

 

한편 파리장서 기념비 건립후원 추진위원회는 오는 29일 고창 새마을 공원에서 파리장서 기념비 제막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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