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이 더 친숙한 현대인 안타까워 / 공동체 노력으로 지키고 가꿔야 이어져
음악은 세계를 품는 언어다.
2001년부터 이어온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이를 확인해왔다. 우리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세계의 음악이 이곳에서 버물렸다. 그 축제가 다시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본보는 전주세계소리축제와 함께 한국음악과 세계음악의 흐름을 읽는 기획물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이 나서 우리 전통음악과 세계 각국의 음악의 특징과 매력들을 소개한다. 필진은 최동현(판소리 연구가)·김선국(저스트 뮤직 대표)·장재효(북촌뮤직페스티벌 예술감독)·채광석(전주 재즈클럽 자코 대표)씨. 소리축제 직후까지(10월 24일) 매주 두 차례(화, 금요일) 연재할 기획물은 ‘전통음악’과 ‘월드뮤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자리다.
본보 연재물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운영하는 공식블로그 ‘소리타래’에도 함께 올려진다.
판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물론 판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판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판소리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판소리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판소리를 사랑하고 아낄 수도 있다.
그런데 판소리가 참으로 중요한 이유는 판소리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해 주는 자기 정체성의 지표가 된다는 점이다. 자기 정체성이란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말한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판별해주는 지표가 된다는 뜻이다.
국문학자 조동일은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라는 책에서, 누가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가리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우리말을 모국어로 삼고 있는가? 둘째, 김치를 먹으면 맛이 있는가? 셋째, 판소리를 들으면 즐거운가?
첫째 관문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통과한다고 하였다. 우리말을 쓰는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기만 하면 이 조건은 저절로 만족된다. 우리말을 쓰는 환경에서 자라면 우리말이 그 사람의 모국어가 된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 사는 조선족도 우리 민족의 일원이 된다. 둘째 관문은 인류 공통의 유아식인 젖을 떼고 자기 문화의 산물인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 통과한다고 하였다. 부모가 김치를 즐겨 먹으면 자식도 배워 우리 민족의 일원이 된다. 맛은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영양가를 따져서 맛이 있고 없고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릴 적부터 먹고 살아 익숙한 게 맛이다. 그런데 세 번째 기준인 판소리에 관한 감수성은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생활 자체가 아니고, 생활을 근거로 해서 이룩한 고차원의 문화이기 때문에, 공동체 전체의 노력으로 지키고 가꾸어야 이어진다고 한다.
조동일 교수는 또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 번째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3분의 2의 자격만 가진 한국인들이다. 곧 고차적인 문화적 표현과 감성의 영역에서 우리는 이미 한국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판소리가 차지해야 할 자리를 서양의 고전음악이나 유행가, 그리고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우리 유행가나 가곡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에 관한 한 우리 것이 오히려 낯설게 되어버렸다.
10여 년 전에 필자는 연변 지역의 판소리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들은 판소리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오래 동안 고립되어 있었으면서도 판소리를 지켜왔다. 물론 그 판소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별것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판소리를 유지해 온 것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판소리를 지켜온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한 조선족 민속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속의 조선족은 상시적인 소멸의 위기 속의 존재이다. 판소리를 지키려고 노력해 온 이유는, 판소리를 지키는 것이 민족을 지키는 한 방법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말 속에 판소리의 가치가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을 잃으면 국가를 잃지만, 판소리를 잃으면 민족을 잃는다. 국가는 회복될 수 있지만, 민족은 한 번 사라지고 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최동현 군산대 교수(국문학)는 국내 처음으로 판소리 다섯바탕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한 판소리 연구가다.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현장에서 판소리 해설 등을 통해 판소리의 대중화에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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