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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사고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제시문 1〉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것에 적합한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례가 비언어적인 수단에 의한 생각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일까? 오히려 말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나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만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그것을 명료하게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생각이 안개처럼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생각하는 느낌이 있다고 해서 이를 언어 없이 사고가 수행되는 사례로 보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 고등학교 ‘국어생활’ 중에서

 

〈제시문 2〉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언어상의 차이가 다른 모양의 사고유형이나 다른 모양의 행동양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색깔에 해당되는 말이 그 언어에 없다고 해서 전혀 그 색깔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일까? 해당 어휘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그 어휘가 지칭하는 대상이나 개념을 더 빨리 인식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기는 하겠지만, 해당 어휘가 없다고 해서 그 대상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은 있으되, 그 생각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며, 더구나 생각이 오묘하고 신비한 수준에 이르면 언어는 이를 곡진하게 나타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경험 세계를 상이하게 범주화한 우리의 언어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고, 주어진 단어에 의해서 지칭되는 개념에 대한 사고가 명확한 어휘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쉬운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한 사실이 얼마만큼 중요하며 의미가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 고등학교 ‘국어생활’ 중에서

 

〈제시문 3〉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군.” 누군가 윈스턴 뒤에서 지껄였다.

 

그는 돌아섰다. 조사국에서 일하는 친구 사임이었다. ‘친구’란 말이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에는 친구란 건 없고 동무만 있다. 그러나 동무 사이에도 남보다 좀 더 친한 동무가 있는 법이다. 그는 언어학자로, 신어(新語, Newspeak) 전문가였다. 현재 신어사전 제11판을 편집하는 큰 편집위원회의 일원이다. 그는 윈스턴보다 몸집이 작고 머리는 큰 데다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은 슬퍼 뵈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한데, 얘기할 때는 상대방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중략)

 

“사전은 어떻게 돼가나?” 윈스턴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럭저럭. 난 형용사를 맡았는데 무척 재미있어.” 사임이 말했다.

 

그는 신어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즉시 밝아졌다. 그는 스튜 접시를 밀어놓더니 섬세하게 생긴 손으로 한쪽은 빵 덩이를, 다른 쪽은 치즈를 들고 소리가 잘 들리도록 몸을 식탁 쪽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제11판이 결정판이지. 지금 이 신어를 마지막으로 손대고 있는데 그러면 다른 말을 쓰지 않아도 돼. 이 일이 다 끝나면 자네 같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지. 감히 말하네만 자네는 우리의 주된 업무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천만에! 우린 말을, 하루 수십, 수백 마디 어휘를 없애고 있다네. 뼈만 남도록 잘라내는 셈이지. 제11판에는 2050년 전에 없어질 말들은 하나도 수록하지 않네.”

 

그는 허기진 듯 빵 덩이를 덥석 물고 두어 번 꿀꺽 삼키더니 다시 현학적인 정열로 말을 계속했다. 마르고 시커먼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눈에는 비웃는 표정이 없어지고 거의 꿈꾸는 듯 빛나기 시작했다.

 

“말을 없앤다는 건 멋있는 일이야. 물론 버려야 할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명사도 수백 개는 되지. 없애는 건 동의어뿐이 아니지. 반대어도 있어. 도대체 단어란 게 단순히 다른 말의 반대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낱말에는 그 자체 내에 반대어가 포함되어 있네. 예를 들어 ‘좋다(good)’라는 말을 생각해 보게. ‘좋다’라는 말이 있으면 구태여 ‘나쁘다(bad)’는 말이 필요하겠나? ‘안 좋다(ungood)’로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그게 다른 말보다 더 정확한 반대어라 할 수 있지. ‘좋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싶을 때, ‘훌륭하다(excellent)’느니, ‘멋있다(splendid)’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필요할까? ‘더 좋다(plusgood)’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그걸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더 좋다(doubleplusgood)’로 하면 되지. 물론 이런 형태의 단어를 이미 쓰고는 있지만 신어사전 최종판에서는 이 말 한 마디만 남을 걸세. 결국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에 대한 모든 개념은 다만 여섯 개의 낱말로, 실제로는 단 하나의 낱말로 표현되는 거지. 멋있지 않나, 윈스턴? 물론 이건 애초에 빅브라더(Big Brother)의 아이디어야.”

 

그는 군더더기를 덧붙였다. 빅브라더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윈스턴의 얼굴에는 흥미 없다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그러나 사임은 윈스턴이 신어에 대한 열의가 없는 것으로 재빨리 알아차렸다.

 

“윈스턴, 자네는 신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사임은 맥이 빠져 말했다. (중략)

 

사임은 흑빵을 한입 뜯어 씹고는 말을 계속했다.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思想罪)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필요한 개념은 단 한 마디 말로 표현되며 그 말은 정확히 정의되어 다른 부차적 의미는 없어져 버리고 말지. 제11판에서 우리는 벌써 그 정도로 해 놓았어. 그러나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될 거야. 한 해 한 해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겠지. 물론 지금에도 사상죄에 대한 이유나 구실이 있을 수 있지. 그것은 단순히 자기훈련이나 현실통제를 못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결국 그나마 필요 없게 돼. 혁명은 언어가 완성될 때 완성돼. 신어는 영국사회주의고, 영국사회주의는 신어야.” 그는 은근히 만족한다는 듯 덧붙였다. “늦어도 2050년까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글쎄…” 윈스턴은 머뭇거리다 그만두었다.

 

“글세, 노동자 외에는…” 하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으나 이 말이 비정통주의적인 말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만둔 것이다. 그러나 사임은 윈스턴이 하려는 말을 알아챘다.

 

“노동자는 인간이 아닐세.” 그는 거침없이 말했다. “2050년까지는, 아마 그 전이 되겠지만, 구어(舊語, Oldspeak)에 대한 지식은 모두 사라질 걸세. 모든 과거의 문학도 없어지고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이들은 다만 신어역(新語譯)으로만 남을 거네. 그것도 다른 말로 바뀐다는 정도를 지나 원래의 의미와 반대되는 것으로 변할 거야. 당의 문학까지 변할 거야. 슬로건까지 변할 거야. 자유의 개념이 없어졌는데 ‘자유는 예속’이란 슬로건이 있을 수 있겠나? 모든 사상적 분위기도 변할 걸세. 실상,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란 없어져 버릴 걸세. 정통주의는 생각하는 것,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야. 무의식 바로 그거야.” - 조지 오웰, ‘1984년’ 중에서

 

■ 논제의 포인트 및 평가기준

■ 논술문을 6단 논법으로 재구성하기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제시문 1과 2의 주장을 비교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3에 등장하는 ‘사임’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1,000자)

 

2. 면접 논제

 

우리 조상들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언어 표현을 찾아 이야기해보시오.

 

■ 쟁점 관련 도서

 

〈사고와 언어〉 2013. 레프비고츠키, 한길사

 

〈언어, 사고, 그리고 실재〉2010, 벤자민 리 워프, 나남출판

 

■ 쟁점 관련 영화

 

Nell, 1994, 미국, 마이클 앱티드

 

달팽이의 별, 2012, 한국, 이승준

 

■ 학생 글과 교사 총평

 

1. 학생 글

제시문 1은 생각은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어떤 생각을 말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생각하는 느낌일 뿐,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제시문 2는 생각과 일치하는 말이 없더라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가 있다면 편리하겠지만, 설사 해당 어휘가 없더라도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임은 어휘가 줄어들면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기 때문에 언어를 없애면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제시문 1과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사임의 주장에 반대한다.

 

첫 번째로,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예를 들어 높은 산에 올라가 정상에 섰을 때, 사람들은 수만 가지 생각을 한다. 이 생각들을 나타낼 수 있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분명 사고하고 있다. 3차원이 1차원으로 정의될 수 없듯이 말로 표현할 수 없더라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언어는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으로 세상이 바뀌면 어휘가 필요해져서 언어가 생긴다. 사임이 말한 자유도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가 ‘자유’라는 말을 모른다면 자유를 생각하지 못할까? 분명 아닐 것이다. 자유는 어느 순간 사전에 수록된 게 아니라, 자유로움을 정의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 사용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생각을 해서 언어가 생기는지, 언어가 있어 사고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전자라고 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임은 언어를 없애면 언어에 해당하는 생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생각이 체계화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생각은 본질적으로 모호한 것이기 때문에 체계화시킬 수 없다. 어떤 말을 할지 선택할 수는 있지만, 생각을 선택할 수는 없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지 못하므로 언어를 없애서 사고하지 않는 상태로 몰아넣을 수 없다.

 

물론 언어가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언어가 있다면 생각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쉽게 모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언어가 없어도 사람은 사고할 수 있다. 원래 생각은 언어로 뜻을 전부 담아낼 수 없으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가 만들어진다. 언어의 제한을 통해 생각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문소희 (상산고등학교 1학년)

 

2. 교사 총평

 

파블로프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말”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있어 언어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내적인 사고와도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이번 논제는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에 대한 수험생의 입장,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펼쳐낼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문제였다.

 

- 독해력

 

제시문 1과 2의 입장은 비교적 명시적으로 제시문에 드러나 있었기에 각각의 관점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사임의 의견에 대한 동조 혹은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사임의 의견을 조목조목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위 학생은 제시문 1,2 및 사임이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 고른 이해를 보이고 있다.

 

- 논리력

 

이번 문항에서 학생별로 많은 편차를 보이는 부분은 바로 논리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 학생은 사임의 의견을 반박하기 위한 주장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다만, 보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근거보다도 역사적, 문화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사례들을 들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좋겠다.

 

- 표현력

 

첫 번째 주장을 ‘사고는 언어 이전에 이미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정도로 바꾸어본다면 뒷받침 문장들과 보다 밀접하게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문단의 ‘언어가 있다면 생각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쉽게 모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는 문장은 중복되는 단어를 빼고 ‘언어를 통해 우리는 생각하는 바를 보다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모호한 개념을 체계화 할 수 있다’ 정도로 보다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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