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근절 강제 필요" vs "변호사협회의 권한 남용"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가 차한성(61·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겠다고 나선 데 이어 모든 대법관 후보에 게 개업 포기 서약서를 받겠다고 밝히면서 법조계에서 이런 조치의 적법성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관예우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법정 단체인 대한변협이 법률 근거 없이 일련의 행동을 앞세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전관예우 폐단에 대한 국민적인 의혹과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조계의 자정 활동이 절실하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 변협, 대법관 인사청문회 개입 '초강수' = 하창우 변협 회장은 23일 언론에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못하도록 후보자 청문회 때 이에 대한 서약서를 받도록 국회의장에게 협조 요청을 하는 공문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모든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활동을 금지하겠다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하지만, 하 회장의 이런 선언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전관예우 근절에 대한 의견을 국회에 전할 수는 있겠지만, 서약서까지 받도록 압박하는 것은 국회 입법권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이전의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국회의원들이 대법관 퇴임 이 후의 활동에 대해 질의해 적격성을 검증하고 있는 마당에 일종의 이익단체인 변협이 국회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입법권과 사법권의 엄정한 분리·독립의 차원에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다.
전관 출신이 아닌 한 재야 변호사는 "인사청문회는 엄연히 국회의 기능인데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사법부의 한 축인 변협이 그런 서약서를 받도록 압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변협이 차한성 전 대법관의 개업 신고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서도 "개업 거부는 변호사법에 근거가 없어 불법적인 행위"라며 "의견을 개진하는 것과 법률적인 기능을 남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데, 변호사법에 근거를 둔 법정단체인 변협이 기능을 남용해 불법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 전·현직 법관들 "초법적 행위" = 전·현직 법관들은 '전관예우 근절'이라는 명분 앞에서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변협의 최근 행보가 지나치다고 입을 모은다.
대법관 출신이라고 해서 변호사 활동을 아예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초법적인 행위라는 지적이다.
재경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전관예우의 폐단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대법관출신 변호사들의 지나친 영리활동은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호사 활동을 할 기회를 아예 박탈하겠다는 것은 민주사회에 맞지 않는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여러 공익 소송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대법관, 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들도 개업 신고를 하지 않고서는 변호사로서의 공익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한 법무법인에서 공익 분야를 맡아 활동 중인 전관 출신 변호사는 "공익 소송도 직접 변론을 하거나 상담을 하려면 변호사 개업 신고를 해야 가능하다"며 "변협이 개업 신고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변협 스스로 모르진 않을 텐데,거부 방침을 밝힌 것은 영리 활동을 자제하라는 권유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퇴임한 대법관의 다수가 변호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대법관 출신 법조인들이 변호사로서 경륜을 펼치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 "전관예우 폐단 근절 위해 자정 노력해야" = 변협의 행보에 법적·절차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이번 사태가 전관예우 폐단을 근절하기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도장을 찍어줘야 대법원에서 심리를 받을 수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는 수천만원의 도장값을 주는 게 관례'라는 소문들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이 때문에 '전관예우 타파'를 외치는 하창우 변협 회장에게 많은 변호사들이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결국 이런 논란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대법원이 시스템을 정비하고 법관들 스스로 전관 변호사를 우대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한 재야 변호사는 "전관예우 폐단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기 때문에 이런 무리수까지 나오게 된 것으로 본다"며 "더 큰 국민적 저항을 맞지 않으려면 전·현직 법관들이 스스로 이런 논란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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