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 서정의 채만식, 저항적 정신의 밥 딜런, 그리고 그 사이의 고은
우리고장 군산과 충남 서천을 잇는 금강하굿둑이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군산시 내흥동 금강 둔치에는 굽이쳐 황해로 흐르는 금강물을 마주하고 채만식 문학관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백릉 채만식은 탁류, 레디메이드인생, 태평천하 등 근대 풍자문학의 정수로 손꼽히는 많은 작품을 남긴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에두르고 위몰아 멀리 흘러운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 다가 깨어진 꿈이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 채만식, ‘탁류’ 中에서 -
황해로 세차게 굽이쳐 흘러가는 금강의 황톳물을 바라보며소설 탁류의 한 구절을 되새겨 보면 80년 세월을 관통하는 묘사의 섬세함에 절로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스웨덴 한림원은 미국의 포크록가수 밥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순수 문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경우도 매우 드물지만-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회고록인 ‘제2차 세계대전’등으로 1953년 수상하였음- 대중가수가 수상한 것은 115년 노벨문학상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대중가수가 문학상을 받은 것에 대하여 일부 작가들의 반론도 어느 정도 예상되었는지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밥 딜런의 노래 가사를 “귀를 위한 詩”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다소의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고정관념을 벗어나 시와 소설로 국한된 문학의 범위와 지평을 넓힌 노벨위원회의 도전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卓見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밥 딜런은 사회상을 대변한 저항적 가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가수다. 특히,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의 가사는 반전과 인권 등 시대를 관통하는 저항정신의 표상으로 읽힌다.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중략) 얼마나 많은 포탄이 휩쓸고 지나가야 더 이상 사용되는 일이 없을까? (중략) 사람이 자유를 얻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 걸까? (후략)” - 밥 딜런, ‘바람만이 아는 대답’ 中에서 -
저항정신의 대표적 가수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것을 보며, 금강이 낳은 걸출한 詩人 고은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는 우리에게 서정적인 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의 역사와 고단한 삶에 대한 노래, 어두운 시대 상황과 맞물린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많은 작품을 써왔다.
10년이 넘게 해마다 가을이 오면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아쉽게도 발표자의 입에서는 그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이제는 팔순이 넘은 老詩人 본인조차도 이 시기가 오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노벨문학상을 받거나 혹은 못 받는 것이 그의 문학적 성취와 탁월한 감수성을 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왕지사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그의 몫이기를 응원하면서, 동명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깊어가는 가을과 어울리는 그의 詩 한편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후략)”
- 고은, ‘가을편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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