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의 활터 홍심정에 최근 문화재급으로 평가 받는 물건 3개가 보존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 돼 관련 학계·문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사고 있다.
김제 홍심정에 보존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 문화재급 물건은 230년의 오랜 세월동안 역대 선생(사두)들의 명단이 적힌 명부인 ‘사안(射案)’ 및 선생안 명부(사안) 보관함인 ‘선생안(先生案)’ 전국 380여곳의 활터 정중앙에 걸려있는 팻말인 ‘정간(正間)’ 등 3가지다.
김제 홍심정은 정조 13년(1789년) 당시 김제군 성산 북편에서 천홍정이라는 명칭으로 조지택 초대 사두에 의해 창립됐으며, 1820년 서변면 옥거리(현 옥산동)로 이전했다가 1826년 서변면 요촌리로 신축 이전하여 홍심정이라 칭했다.
이후 고종 29년(1892년) 51대 사두 진사 조방순 공원때에 103년의 역사를 간추려 기록했고. 그후 1892년부터 1956년까지 64년의 홍심정 기록이 안타깝게도 선생안과 사안만을 남겨두고 모든 행사기록이 멸실됐다가 1978년에 현 김제시 교동 279번지로 신축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도 여느 활터처럼 일층 삼 칸의 가운데에 ‘정간’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고, 그 옆으로 230년 동안의 역대 사두 성명 또는 사진이 걸려있으며, 삼 칸의 전후를 반으로 나누어 마루로 단을 만들어 안팎을 구별해 놓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예이자 군자의 덕목으로 알려진 전통 문화유산인 ‘국궁’은 현재 전국 380여개의 활터에서 약 1만여명의 동호인들이 활동 하고 있다. 동호인들에 따르면 언제부터인가 대부분 활터에서 건물 가운데 칸에 ‘정간’팻말을 걸어놓고 출입 시 ‘정간’에 예(禮)를 행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정간’이 언제 어떤 연유로 생겨난 것인지, 또 어떤 역사적 연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만 있을 뿐 명쾌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유승권(성균관대학교)·박근(군산대학교) 교수가 ‘정간의 원형으로써의 김제 홍심정 선생안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의문점을 밝혀냈다.
두 사람은 이 논문을 통해 “정간의 원형은 선생안이며 선생안은 사당의 위패 형태에서 최소한 1892년도 이전에 선생안이라는 역식형태로 변형됐으며, 정간은 단지 선생안이 모셔져 있던 가운데 칸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1978년도 김제 홍심정이 신축 이전되면서 2층에 선생안을 모시게 됐고, 그 바로 아래 1층에 정간이 걸리게 되었던 것이 이후 전국대회를 통해 와전 돼 전국에 퍼져나간 것으로 추론된다”고 밝혔다.
한편 ‘사안(射案)’ 은 230년의 오랜 세월동안 역대 사두들의 명단이 적힌 명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 받고 있고, ‘선생안(先生案)’은 1892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정간(正間)’은 전국 380여개의 활터 정중앙에 걸려 있는 팻말로, 그 시작이 김제 홍심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최근 밝혀졌다.
양창진 김제 홍심정 사두(100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김제 홍심정은 성산을 중심으로 과거 학문의 중심지였던 향교와 무과 수련의 중심지였던 활터, 행정의 중심지였던 동헌이 어우러져 국내 유일하게 과거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음으로써 그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 받고 있다”면서 “이를 하루빨리 문화재로 지정해 그 가치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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