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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맛따라 ⑥ 군산 근대역사거리 맛집] 맛깔난 음식으로 오감 만족하고 시간여행 출발~

100만 관광객 시대, 군산의 아이콘 부상 / 중화요리·한식 등 30~40분 기다리는 인기 음식점들 즐비

군산의 근대 역사는 곧 군산항의 역사다. 군산항에 도나드는 선박의 뱃고동 소리가 높았을 때 군산경제는 꿈틀거렸고. 반대일 때 군산은 휘청거렸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은 일본으로 쌀 반출 핵심 통로였다. 1933년 기준 국내 쌀 생산량의 53.4%가 일본으로 반출됐으며, 그중 20%가 군산항을 통해 나갔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군산은 1930년대 성장했고, 그 뒤 성장을 멈춘 후, 화석과도 같은 도시’로 추락했다는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현재 군산관광의 아이콘이 된 군산 역사문화의거리는 1930년대 중반 이전에 대부분 완성됐다. 도심 주요 도로와 철도가 항구를 향해 뚫렸고, 세관과 우체국 등 관청과 은행·포목점·미두장 등 상가도 내항 주변에 집중됐다. 항만 인접지역 거리를 지금도 일각에서 ‘본정통’이라 부른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에는 남부여대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렸고, 길거리에 판 하나만 놓아도 장사가 됐다고 군산 향토사학자 이병훈 시인이 생전에 들려줬다. 군산내항 주변이 일제 때 가장 경기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인 대부분은 부두막노동 일꾼이었고, 거리에서 목로판을 깔고 감자 고구마·떡장수 등 밑바닥 생활을 했다는 말도 곁들여서다.

 

오늘에 이르러 일제가 남긴 잔재들이 군산의 관광산업을 떠받드는 자산이 될 것이라고는 2000년대 이전까지 생각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지어진 건축물의 보존과 철거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건물이 헐리기도 하고, 철거 직전에 살아나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등록문화제 제도를 도입하고, 군산시가 근대문화유산벨트화지구 사업을 통해 차별화된 역사문화 관광지로 정비하면서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군산의 주요 근대역사 콘텐츠들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도보로 20분 이내에 집적해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옛 군산세관을 비롯해 일본 제18은행을 개조해 만든 군산근대미술관, 미곡창고였던 장미공연장, 적산가옥이었던 장미갤러리, 조선은행을 개조한 군산근대건축관, 일본 건축양식의 숙박시설인 고우당, 영화촬영지 초원사진관, 일본식 사찰 동국사, 진포해양공원 등이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코스다.

 

이런 군산 근대역사문화의거리가 전국적인 관광명소임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맛집이다. 전주 한옥마을과 같이 군산 근대거리에서도 줄을 서서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 앞은 주말이면 긴 줄로 장사진을 이루며, 1951년 문을 연 근대건축관 건너편의 중화요리점 빈해원도 관광객들로 넘친다. 복성루, 쌍용반점, 용해장, 지린성, 수송반점 등도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중화요리 맛집들이다.

 

△역사지구로 뜬 ‘한일옥’

 

줄 서 기다리는 군산근대거리의 맛집 중에 ‘한일옥’이 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블로거 등을 통해 이름난 맛집이며, 군산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음식점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과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음식점 건물은 1937년 지어졌다. 외과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레스토랑, 보신탕집으로 변신을 거듭한 끝에 4년 전 현재의 한일옥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주인 김혜주씨(50)가 이 집으로 오게 된 사연에 인간미가 물씬 묻어났다. 음식점은 40년 전 김씨의 시이모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고팠던 시절, 소고기 국물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어 선택한 메뉴가 무국이었다. 현 음식점 바로 옆 허름한 집에서 시작한 ‘한일옥’은 초기에는 주로 운전기사들이 이용한 기사식당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군산 시민들에게 알려졌고, 관광객 유입에 따라 음식점은 대박이 났다.

 

김씨는 비를 맞으면서까지 30~40분씩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면서 3~4년 전에 구입한 현 장소로 이전을 결심했다. 번듯한 집으로 이사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보고 그 전까지는 허름한 집을 고수했단다. 큰 곳으로 옮기면 손님들이 줄 서 기다리는 일이 없을 것으로 여겼으나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손님들에게 미안하단다. 평일 평균 700명, 주말 1300~1400명의 손님을 맞는다.

 

한일옥의 주 메뉴는 무국이다. 특별한 밑반찬이 제공되는 것도 아닌 데, 손님들을 불러들이는 비결이 궁금했다. 깔끔한 국물 맛이 비결이다. 콩나물 국밥을 대신할 수 있는 해장으로 ‘엄지 척’이다. 소고기와 무를 넣고 50분 정도 끓인 물에 굵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8000원으로 가격을 올린 대신 소고기, 국물, 밥은 무한리필이다.

 

음식점 2층을 옛 생활용품 전시장으로 꾸려놓은 것도 이색적이다. 옛날 전화기, 라디오, 축음기, 주판, 놋그릇, 유기 수저, 향로, 징, 반닫이, 고리짝. 붕어빵 틀 등 ‘과거로의 여행’에 걸맞게 진열된 골동품(?)들이 근대거리와 잘 어울렸다.

 

△옛 추억의 ‘아복식당’

 

한일옥의 무국은 군산 음식의 상징과는 거리가 있다. 보통 군산의 대표 음식으로 회와 꽃게장, 아구(복), 물메기 등이 꼽힌다. 특히 군산의 지역명을 단 아구집은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군산에서도 군산복집·수풍회관 등 이름난 아구집이 즐비하다. 역사지구에서 조금 벗어나 ‘째보선창’에 인접한 아복식당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복 전문점이다.

군산 내항 주변의 집들이 다 그렇듯, 이 음식점 역시 일제 때 만들어진 가옥이다. 지붕이 뚫려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이했다. 음식점은 1986년부터 30년 넘게 부두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했다. 3년 전 작고한 친정어머니와 함께 15년째 복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신소정씨(42)는 역사지구의 음식점과 달리 경기상황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새만금방조제 완공 후 복이 잡히지 않은 데다, 대명동 화재사건 후 유흥가들이 문을 닫은 영향이 크단다. 인근 재래시장조차 사람이 없단다. 주인 신씨는 고기가 잘 잡혀서 IMF가 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고 옛날을 그리워했다.

 

그럼에도 이 집 음식점이 굳건한 것은 예전의 단골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군산에서 복 요리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은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복을 원료로 쓸 수 있는 복 생산지가 인근이었고, 부식으로 쓸 수 있는 해산물 등 식재료들이 풍부해서다. 지금의 복 재료는 부산에서 조달한다. 팔딱팔딱 뛰는 복은 아니어도 산 채로 냉동을 시켜 선도를 좋게 하는 게 기본이다. 오래 끓여 진한 맛을 빼는 대신, 재래식 된장으로 간을 맞춰 깊은 맛을 내는 게 이 집의 비결이다. 복 양이 푸짐하고, 파 무침 등 싱싱한 밑반찬도 자랑이다. 군산의 차가운 갯바람을 맞고 나서 찾았던 얼큰하고 시원한 복탕이 다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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