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인협회가 고은 시인을 조명하는 강연을 마련했다가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애초 오늘 오후 3시 전북문학관에서 ‘시인 고은에 대한 잡론- 삶과 문학 그리고 현실’을 주제로 예정한 행사다. 전북문인협회에 따르면 이 강연은 ‘2018 전북문학관 문예 아카데미 특강’의 일환으로 추진됐고, 이복웅 시인이 강사로 나서 고은 시인의 삶과 작품,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고,결국 주최측이 행사를 취소한 것이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주변의 문제 제기에 대해 “문단 대선배를 보고 글쓰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처신도 잘 하자,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준비했다. 강연자와 상의해 강연 내용을 일부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물러섰다.
사실 고은 시인이 처한 최근의 상황을 되짚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이고, 모든 것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은의 성추행도 문제거니와 그에 대한 고은의 태도는 더욱 큰 문제란 점을 전북문인협회는 간과했다.
강연을 하기로 했던 이복웅 시인은 “고은의 행동을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변명에 나도 화가 나고 잘못은 강연에서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순수 문학성까지 ‘미투’에 휘말려 매도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고은에게 ‘순수 문학성’이 있는 것일까. 미투운동으로 세상이 뒤집혔건만 그에 대한 반성 없는 시인이 고은이다. 그의 문학이 이런 작가 의식의 소산이라면 거부하겠다는 것이 요즘 인심이다.
고은 시인은 각종 강연에서 시에 대해 “염통에서 나오는 새 소식”이라고 말해 왔다. 예술작품에는 작가의 치열한 고뇌 곧 혼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그렇듯, 시는 치열한 내면의 고뇌와 성숙의 결과물이다. 한 편의 시에 사용된 시어, 또 점 하나에도 심오한 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동안 국민에 각인된 시인 고은은 그저 술 한잔 걸치고 흥얼대는 낭만 시인이 아니다. 노벨상 후보에 매년 오른 ‘대단한’ 시인이다. 그래서 문제가 큰 것이다. 수많은 문학계 후배들이 그의 부적절한 언행을 고발했지만, 오직 그 혼자만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식이다. 그가 말해 온 금강안과 혹리수, 안핵사는 다 어디에 두었는가. 사과는 나무에 걸려 썩어 버렸다.
전북은 요즘 적지 않은 문인들이 추락, 난감한 상황이다. 서정주와 채만식은 친일 때문에, 신경숙은 표절 때문에 문제가 됐다. 그래도 지킬 가치는 제대로 지켜야 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역사든, 문학작품이든 작가의 순수한 영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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