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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마당과 문화다양성

상대방 무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언행은 폭력이다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축제일에 비가 오면 관객과 연출가 모두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행사를 간단히 취소할 수 없어서다. 물론 돌풍과 같은 자연의 위력으로 관객의 생명 자체가 위험해진다면 취소를 결단하겠지만, 바람이 동반되지 않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곧 그칠 듯 기대를 부풀린다.

이렇게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 앞에 사람은 무력해진다. 하지만, 이 경험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후속 조치를 낳지는 않는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험들을 반성의 재료로 활용하는가 아니면 무력감이라는 본능적인 불쾌함을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녀 혹은 그에게 떠맡겨버리는 방식으로 처리하는가에 따라 사람 간의 관계 맺는 방식과 생활태도 는 달라질 수 있다.

비 오는 축제 마당에도 전문적인 예술행사와 생활문화프로그램과 체험부스는 다양하게 구성된다. 어르신들은 민요와 장구 협연을 하시고, 중년들은 7080 음악을 즐기고, 어린이들은 동요와 무술퍼포먼스에 환호하며, 청년들은 시음과 나이트 뮤직 쇼에 참여한다. 축제에서 펼쳐지는 세대별 혹은 성별 문화다양성은 프로그램 외에도 주차장이나 도로나 장터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스태프들과 관객들의 접촉에서도 드러난다. 축제 현장에서 프로그램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에서 성별, 세대별 문화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상대방을 무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언어와 행동은 문화다양성이 아니라, 폭력으로 해석되는 것이 정확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주행하고자 하는 도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교통을 통제하는 여성 스태프에게 분노하여 차에서 내려 반말을 하며 삿대질을 하고 스태프의 몸을 밀치는 중년 남성의 언행양식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여성에게는 반말을 하거나 손찌검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생활해 온 경험들이 반성 없이 계속 축적되고 강화된 결과일 것이다. 마치 최근 공감되고 있는 갑질 고성과 욕설의 문제와 닮았다. 이것은 문화다양성이 아니고 인권 침해 및 업무 방해 행위이다.

애초에 교통 통제가 없는 축제는 불가능한 것일까? 마을이나 동 단위의 축제로 기획하여 규모를 줄인다면 축제의 숫자는 늘어나더라도 교통 통제와 같은 불쾌한 강제는 사라질 수 있다. 만일 불가능하다면 교통 통제를 자연 질서처럼 수용하고 느긋하게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간 불편한 질서를 지켜야 하는 국면에서 여유가 나타나려면 개인이 일상 속에서 행복한 삶을 운영해 원망의 습관이나 태도가 축적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화부터 내고 보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그렇게 해서 일단 상대방을 윽박지르려는 문화는 반성과 복기의 가치를 값없이 여기는 사회에서 태어난다. 우리 사회는 반성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고귀한 성찰활동이라기보다 열등한 자들의 자책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용 및 복지정책과 함께 행복감의 원천을 발굴해내고, 행복을 느끼는 방법론을 공유하는 교육이나 문화정책, 술과 폭력에 의존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서적 표현이 가능하도록 이끌어주는 문화사업, 타인을 거칠 게 대하는 것이 힘이라고 가르쳐 온 권위주의적 생활양식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정밀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들이 반성과 복기의 힘으로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동시에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색된 정책과 사업들은 사회의 지도자 그룹에 시범 적용하여 폭력이 아닌 진정한 문화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파급효과를 높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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