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미·윤수하·이은송 시인 각각 신간 발간 고요하게, 아픔 보듬고 시어·시상으로 노래
오늘날 전북 시단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존재인 여류 시인들. 색깔도 농도도 다른 여류 시인 세 명이 각자의 삶으로 엮은 시집을 내놨다. 이들이 존재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시어와 시상, 시학을 비교해 읽는 즐거움이 작지 않다.
김형미 시인은 세 번째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 로 묵화처럼 고요한, 행간으로 존재하는 시인의 운명을 노래한다. 시인은 온 힘을 다해 쓸쓸함에 맞서고 통증을 삼켜낸다. 그래서 딱 하나만 사랑하는, 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는 세상이 시인에게는 어쩌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사랑할>
“찬바람 불면서 물이 고여들기 시작한다/ 몇 새들이 저 날아온 하늘을 들여다보기 위해/ 물 깊어지는 나뭇가지에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다/ 생숨을 걸어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 세상에는 있는 것인가, 곰곰 되작이면서// 그래 사랑할 만한 것이 딱 하나만 있어라” ( ‘시월’ 中)
“흰 새가 날아오는 쪽에서 가을이 오고 있다/ 살던 곳의 바람을 죄다 안고서// 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며 살고 싶다” ( ‘가을’ 中)
문신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김형미 시인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인이라고 평한 뒤 “이런 시인들은 바라보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다만 들여다볼 뿐”이라며 “심연(深淵)이라는 욕망의 물낯에 드리워진 자기 표정을 확인하듯, 자기의 눈으로 오롯하게 들여다볼 때 심연의 무늬는 읽힌다”고 밝히기도 했다.
들여다보는 일은 시선(視線)이 아닌 심선(心線)이 닿아야 하는 문제. 이 심선으로 시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자신을 알게 된다.
윤수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 는 우리의 생을 가로지르는 불가해한 흔적들과 마주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인연 줄에 얽매인 채 이뤄지는 생명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는 형체와 이름이 없는 존재를 향한 하염없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입술이>
윤 시인은 우리 몸을 휘감고 있는 이 흔적들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가상이지만 현실과 이어져 있는 이미지.
“책 틈에 커피를 흘렸다./ 온종일 그것을 닦느라 뒤졌다./ 그러나 그림자처럼/ 어딘지 자꾸 스며들었다./ 검은 방울은 흩어져 번식했다. 검고 기다란 다리를 휘휘 저어/ 수십 수백 마리의 똑같은 형상이/ 누워있는 내게로 모여들었다.” ( ‘몸속의 거미’ 中)
또 시인은 끝없이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 과정을 시작(詩作)의 근거로 삼는다. 그리고 수많은 상처와 흔적이 모여 이룩되는 다채로운 생명의 세계는 자신이 곧 타자가 되는 어떤 세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타자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오홍진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내 안의 흔적을 바탕으로 타자로 나아가는 길은 윤수하 시인이 추구하는 시 쓰기의 길이 된다”며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타자, 혹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나가 나타나는 지점에서 그의 시가 탄생한다”고 평했다.
첫 번째 시집을 낸 이은송 시인. <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 은 오랜 세월 시를 써온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적은 연민의 기록이다. 소멸과 파멸의 시이고, 재생과 탄생의 시이다. 시인은 삶에 내재한 통증을 자각하고, 이를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강력한 생의 의지를 표출한다. 웃음이>
이 시인은 시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병을 앓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자신의 파멸을 생의 절벽까지 밀고 가며 끝내 자기 회생에 대한 갈망에까지 이른다. 그에게 시는 정화와 재생, 자기 구원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어찌 병에 들지 않고 이곳을 건너겠는가/ 오 내 몸의 균열로 들어서는 초록/ 나는 참지 못하고 이슥한 밤이 오면 타라 여신처럼/ 반라의 몸으로 시바 신의 성전으로 스며들 거예요/ 산산이 부서져 파멸당하더라도/ 기어이 저 초록의 음역들을 훔쳐 오고 말 거예요” ( ‘입하’ 中)
초록은 치유와 재생의 상징이듯 시인의 의지는 통증을, 아픔을 감내하면서 기어이 초록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으로 귀결된다. 시인에게 치유는 아픔을 건너온 단순한 상처의 회복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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