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물 석등 해체해야" vs "아픈역사도 보존해야"
전주시, 다가교 석등 해체해 전주역사박물관에 전시 예정
“일제의 흔적은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다가교의 석등은 반드시 해체해야 합니다.”(전주시 우아동 송경록 씨·29)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일제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보존해 교육의 장으로 사용해야 합니다.”(전주시 송천동 공다빈 씨·38)
전주시가 1937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다가교 석등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철거한 뒤 전주역사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도민 태반이 다가교 석등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현재의 석등을 유지하고 그 옆에 일제 잔재물이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우자는 의견도 나온다.
반면 일제 잔재의 부산물인 다가교 석등의 철거를 신속하게 진행해 아픈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폭 25m, 길이 75m인 다가교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사마교(당시 다가교)는 신사를 왕래하는 일본인의 참배 통로였다. 그러던 중 1920년 홍수로 사마교가 유실됐고 1935년 일제는 총 길이 58m, 폭 7m의 교량을 다시 세웠다. 이름은 ‘대궁교’였다. 이 대궁교도 1935년 홍수로 인해 교량의 3분의 1이 유실됐다. 일제는 본격적으로 다가교를 대폭 확장, 1937년 길이 75m, 폭 7m의 교량을 건설했다. 이때 교량 4곳 모퉁이에 있는 현재의 석등도 함께 만들어졌다.
다가교 석등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 관폐대사였던 남산 조선 신궁의 석등과 모습이 흡사하다. 일제 잔재 논란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전북일보(1965년 1월 12일 자) 다가교 보도 사진에는 현재의 석등이 그대로 있어 교량 확장 때 원래의 석등이 그대로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
시가 석등을 철거해 전주역사박물관에 보존할 방침이지만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침탈자료 수집가인 군산 동국사 종걸 주지 스님은 “다가교에 설치된 석등은 유물이 아니기에 당장 일제의 흔적인 석등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도 “다가교 석등은 다가교의 옛 이름인 대궁교에 설치된 일반적인 장식에 불과하고 석등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가 크지 않다”며 “일제시대 만들어진 석등이 있었다는 안내문구 만으로 충분히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영기 전주대 관광경역학과 교수는 “다가교 인근에는 3·1운동의 역사적 장소인 서문교회와 신흥중·고등학교 등이 있다”면서 “무조건 청산을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의 거리가 있듯이 전주도 다가교 석등과 인근의 역사적 장소를 활용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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