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동성당에서 이색적인 사진 출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천주교 신앙인이 담는 전동성당의 사진이 있을 것이고, 조금 특별하게는 여행으로 한옥마을에 방문하여 일상의 시간과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남기는 사진이 있다. 그런데 종교적 신념이나 일상적 방문과는 색다르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들로 구성된 사진가들의 출사가 130년 동안 한자리에 우뚝선 전동성당의 상징적 면모를 사진과 기록으로 담아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130주년을 맞이한 전동성당은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사진과 기록을 공모하고 있는데, 현대의 사진뿐 아니라 장롱과 다락에서 나온 몇몇 기록은 그 동안 미처 몰랐던 것이어서, 향후 많은 이야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가령, 전동성당을 처음 지은 보두네 신부에 관해서는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데,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메달과 죽음을 얼마 앞두고 쓴 편지 등이 이번 공모를 통해 확인되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사실 동서를 막론하고 종교유물과 종교기록은 그 자체로 시대의 거울이기도 하고 역사적 상징성도 크기 때문에 박물관과 기록원의 콘텐츠를 구성하는 데도 비중이 크다. 또한 그것들은 시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어서, 종교유물과 기록물이 시대사와 생활사를 손색없이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직지이다. 직지를 통해서 당시의 불교사상은 물론, 한지문화나 인쇄문화와 같은 서지학적인 차원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기록은 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종교유물과 종교기록이 훼손과 망실의 속도에 있어서도 빠르다. 더러는 너무나 소중하기에 가지고 있던 사람의 죽음과 동시에 태워져 없어지거나, 더러는 너무나 쓸모없다고 여겨지기에 버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종교유물과 종교기록을 모으려는 시도가 결코 이른 감이 있는 것도 아니며, 솔직히는 늦었지만 지금이 또한 적기라는 마음으로 시도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주시에서 오는 20일부터 주최하는 ‘전주 기록물 수집 공모전’의 특별 주제로 시민의 삶 속에 종교문화 기록을 발굴하고 모으려는 의도가 뜻깊다.
혹자는 종교에서 수집하면 될 일인데, 구태여 전주가 나서서 할 필요까지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직지가 종교유산이자 동시에 국가유산인 것처럼, 어떤 특정인이나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모두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설령 그것이 수집된 이후에도 기증으로서만이 아니라 기탁의 맥락에서 관리하고, 언제든지 해당 종교에서 필요로 할 경우에 공유할 수 있다고 한다면, 모두의 자산인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기록원이 그렇게 종교기록을 보전하고, 국학진흥원의 유교책판이 그러하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전주시에서 전주정신의숲 프로젝트를 통해 민간기록물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종교와 관련된 유물과 기록이 상당수 확인되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종교인이 이리저리 이사하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최종적으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모든 것을 고물상에 넘기거나 없애려고 하였던 것도 있다. 전주정신의숲에 기탁된 그것들은 몇 차례 전시에서도 선보여졌고, 몇 점은 유일본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아 소중하게 보전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담겨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설립될 때부터의 기록과 사진을 20여권의 앨범에 간직하고 있던 교사의 기탁 사연도 있다. 어느 날 명을 달리하면서 앨범들도 사후 정리 과정에서 온 데 사라졌다가 소장자의 가족이 그것만큼은 꼭 간직하고 있으라고 했다면서 전주정신의숲에 기탁하였다. 그 앨범에는 예전의 학교시설, 종교시설은 물론 전주의 근현대 발자취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것으로 가득했다. 자칫 없어질 수 있던 것이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무소유의 정신이 짙게 깔린 까닭일까? 우리나라 유산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불교유물과 불교기록의 경우, 훼손과 망실의 속도는 훨씬 심하다. 전주와 전북의 근대현대 기록과 사진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한 스님은 당신이 그 중요성을 아는 만큼, 불교계에서도 이런 마음들이 널리 퍼져 많은 기록들이 다시금 되살아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목이 쉬도록 한다. 이제 그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해당하는 일일 것이기에, 이번 종교문화 분야의 기록공모가 기대된다.
꼭 신앙인이나 종교인이 아니어도, 졸업여행에서건 수학여행에서건 어김없이 사진 한 장 정도는 담은 기억을 누구나 가진 전동성당, 금산사, 서문교회, 원불교 교당의 모습은 물론이고, 민족종교의 그 기록이 어느 누군가의 기억만이 아니라 전주의 기억이 되고 모두의 기억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자산인지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만큼 또 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가지게 될 것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빛깔을 담아낼 수 있는 이들이 그려내는 전동성당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누구나 으레 포토 존에서 담아내는 전동성당이 아닌 종에 얽히거나 이층 회랑과 지하 주추에 담긴 이야기를 간직한 기록과 사진은 무엇을 또 말할까? 이번 출사에 나온 이들이 한결 같이 다음에는 일찍부터 준비해서 금산사의 사계를 담으면 좋겠다고 하듯이, 전주의 종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자료들이 담고 차고 넘치게 나오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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