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금 개미가 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한다.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높고 가파른 진흙길을 개미가 되어 오르고 있다. 오르고 또 오르고 아무리 올라가도 정상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 도 없는 처지가 되어 자꾸만 올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일정한 지점에 도달하면 데굴데굴 굴러 원점에 나뒹굴어져 있다.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신음소리를 낼 수도 없다. 미련스럽게 또다시 가파른 진흙길을 묵묵히 기어 올라간다. 몇 번을 반복하면서도 숙명처럼 자꾸 올라간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까, 전혀 감이 오지 않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정상까지 갈 수 있겠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주 작은 벌레가 내 등에 올라 타 도무지 떨어져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몸을 흔들어 보고 비틀어 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녀석은 껌 딱지처럼 꼭 붙어서 내 몸과 일체가 되기라도 하듯이 꼼짝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녀석을 등에 업은 채 오르려다 그만 발을 헛디뎌 또다시 데굴데굴 구르고 만다. 마침내 녀석은 보이지 않고 나는 질척거리다가 눈을 뜬다. 눈을 뜨면 해가 중천에 떠 있고 서둘러 일 나갈 준비를 한다. 학생들과 함께 한 날들이 어느덧 20여년이 흘러가고 있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나름대로 노련한 실력을 갖추었을 만한데
언제나 새롭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교육의 변화양상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
매 순간 정진해야 한다. 결국 현실에서도 나는 개미가 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어디 나 혼자만의 일이겠는가?
현대인들 대부분은 바쁘다. 병으로 지쳐있다. 약도 없고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지만 누군가로부터 간섭을 받거나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여지없이 증세가 심해진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인내와 불편을 초래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탓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오래전에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여유와 낭만 그리고 문학이 살아 숨 쉬는 일상, 다양한 관계 속에서 풍겨오는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개미처럼 살아가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가끔은 베짱이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황금돼지해인 2019년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접어들었다. 물론 소득에 알맞게 국민들의 생활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급격히 향상된 것은 아니지만 거리를 오가다 보면 사람들의 옷차림새와 얼굴 표정이 예전에 비하여 한결 밝아졌다. 차림새와 표정이 밝아진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 또한 고급 져 보이면 어떨까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에 나이가 들어간다. 뒤돌아보면 아쉬움만 남고 앞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인생을 알만하고 인생을 느낄 만하니 인생을 바라볼 수 있을 만하니 이마엔 주름이 새겨져 있다. 한 조각 한 조각 모자이크한 듯한 삶을 어떻게 맞추나 걱정하다 세월만 보내고 완성 되어가는 맛 느낄 만하니 세월은 너무도 빠르게 흐른다.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이지만 살아 있음으로 얼마나 행복한가를 더욱 더 가슴 깊이 느끼며 살아가자.
하루에 몇 분만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힘들고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맛이 솔솔 나지 않겠는가!
* 노은정 씨는 월간 <한비문학> 에서 동시와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한국아동문학회에서 동화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문예창작지도자격증을 취득하여 한우리 논술교사로 있으며 동시집 <호박이 열리면> 이 있다. 호박이> 한비문학>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