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부터 도서관, 작은책방까지 우리 곁 책의 공간을 중계한다
지역출판인들의 잔치, 한국지역도서전이 5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동안 고창에서 열린다. 첫 회 제주, 작년 수원에 이어서, 내년에는 개최지가 대구라니, 아무래도 군 단위 작은 지역에서 전국을 아우르는 도서전 개최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기초단위 작은 시군에서부터 지역을 기록하는 힘을 북돋자는 취지라니 오히려 살갑다.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
2019고창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를 주제로 삼고 있다. 줄이면 <지역 살다, 책 산다> 이다. 살림의 지역생태계, 살아나는 지역 출판생태계를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다. 지역이 살아나는 데 바탕은 책의 살림, 출판생태계의 건강한 살림이라는 메시지이다. 산다는, 살림의 뜻 말고, 지역 책을 사자는 뜻도 슬쩍 넣었다고 한다. 사야 살려지는 이치. 지역>
이 살림은 단지 책 짓고 읽는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역 안에서 지역출판생태계의 건강성을 되새기자는 뜻도 담았다. 그동안 지역도서전이 로컬기록자와 지역출판인들이 기획한 생산자 중심이었다면 책방, 도서관 같은 출판생태계의 다른 한쪽 끝, 독자(소비자)를 이어보자는 고민의 결과다.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두 건강해야 그 유기체, 생태계가 건강하게 되니까요. 이번 도서전이 출판을 매개로 하지만, 지역을 건강하게 하자는 의미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죠.” 행사를 함께 준비하는 고창군청 김성숙 도서관팀장의 설명이다.
△전라도 지역 책공간을 담는 한국지역도서전 기념도서
한국지역도서전은 매해 기념도서를 출판해왔다. <동차기 서차기 책도 잘도 하우다예> 제주한국지역도서전 기념도서 제목이다. 전국 방방곡곡 책 짓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 제주 말을 제목으로 삼은 책이다. 지난해 수원한국지역도서전 기념도서는 <나는 지역에서 책 지으며 살기로 했다> 로, 지역출판 편집자들의 삶을 담아낸 책이다. 지난해까지 기념도서의 주제가, 지역기록자, 출판인들의 생각과 고민, 현장을 담았다면 이번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기념도서는 ‘지역의 책공간을 찾아서’를 주제로 삼는다고 한다. 전국의 작은책방, 색깔있는 도서관, 책과 머무는(북스테이) 공간을 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 곳곳의 공간을 담고 있지만, 이번 도서전이 열리는 전라권역 책 공간이 중심에 있다. 나는> 동차기>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전라권역 책공간 탐사는 일단락됐다. 전남으로는 완도의 완도살롱, 여수 동동책방, 목포 퐁당퐁당으로부터 순천 심다와 그림책도서관, 도서관옆그림책방(도그), 곡성의 길작은도서관으로 이어졌다. 광주는 계림동 헌책방거리를 휘감으며 광주의 대표 작은책방이며 북스테이 동네책방숨을 비롯해, 흰책검은책방, 책과생활을 더듬었다. 전북에서는 전주의 잘익은언어들, 책방놀지, 카프가서점, 소양고택을 휘감아 전주헌책방거리에서 홍지서림과 한가네서점을 담았다. 전국 다른 지역의 책공간은 지역출판사 친구들이 맡아 도와주고 있다. 울력으로 품앗이로 찾고 기록하고 채우는 한 권의 책,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당신의 마음에 위로를 덧댑니다, 잘 익은 언어들로
2019한국지역도서전 기념도서 안에 들어간 호남의 책공간, 특히나 전북의 작은책방 가운데 한 공간을 중계하려고 한다. 전주 ‘잘익은언어들’이다.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에 다소곳한 ‘잘익은언어들’은 ‘공감책방’이라는 수식을 달았다. 책방 통유리에는 책방지기 이지선 대표가 고심해 적은 글이 붙어 있다.
“설익은 섣부른 언어들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성숙하고 싶은 생각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잘 익은 언어들’은 그 위대한 언어들의 힘을 알기에 한 문장, 한 문장 잘 익은 글들을 당신께 전하고자 합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를 읽고 떠오른 단어의 조합은 책방의 이름이 됐다. 언어의>
광고계에서 카피라이터로 긴 시간 일해 잔뼈가 굵은 이 대표는 2013년 여름, 서울을 떠나 고향인 전주로 내려왔다. 전주 생활 5년 만인 2017년 10월에 책방을 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꿈만 꾸던 이 대표가 책방을 열게 된 건, 순전히 ‘우리 동네에도 책방이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에서였다.
오가는 사람들은 힐끗 책방을 구경하기도 하고, 발길을 멈추고 잘 익은 언어들의 세계로 들어서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반긴다. 하교 시간이면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이 대표는 괜스레 문을 열어두고 밖으로 나간다.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안녕!’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스스럼없이 대한다. 오늘도 역시나 잘 익은 언어들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
△온 마을이 책이다, 2019고창한국지역도서전의 공간
2019고창한국지역도서전은 책마을해리와 책마을 둘러싼 나성리(월봉마을, 성산마을) 공간에서 열린다. 마을 안 구조물을 책의 공간으로 다듬고, 마을길을 따라 책담들로 꾸민다. 책의 공간 책마을해리는 이제 지역의 기록과 지역책의 생태계가 꿈틀거리는 지역출판의 현장으로 변신중이다. 지역출판인들이 모여 ‘지역 책, 마을에 산다. 온 마을이 책’이라고 외친다.
“지역을 기록하고 지역의 이야기를 출판하는 일, 지역의 소멸을 늦추고 지역을 재생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고창한국지역도서전 이대건 집행위원장은 말한다.
고창한국지역도서전이 열리는 기간에 맞춰, 고창에서는 전북도민체전, 전라예술제와 더불어 청보리밭축제가 열린다. 그야말로 고창방문의 절정기이다. 지역과 책 안에서 즐겁고, 책 바깥에서 흥겨운 5월, 고창에서 전국 방방곡곡 이야기로 건강한 책의 생태계와 만날 수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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