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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전북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 ② 익산시 여산면 ~ 완주군 삼례읍

이순신 장군이 전북의 길을 걸어 백의종군 하며 지나간 지 채 4개월도 되지 않아 호남의 보루 남원성과 전주성이 함락됐고, 그 길을 따라 왜군의 일부 세력은 충청도로 북진하기도 했다. 그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북 지역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는 일은 역사를 회고하고, 고난의 백의종군이 나라의 희망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잘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콘텐츠다.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직접 전북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고 기사로 엮고자 한다. 길을 걸으며 현재 길이 이어지는 상황과 < 난중일기> 속 상황을 교차해 설명하고, 경유하는 지역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편에서는 익산 여산면에서 완주 삼례읍까지 걸어봤다.

4월22일 맑음. 낮에는 삼례역 장리의 집에 가고, 저녁에는 전주 남문 밖 이의신의 집에서 묵었다. 판관 박근이 와서 만났고, 부윤도 후하게 대접해주었다. 판관이 유둔(기름종이)과 생강 등을 보내왔다.(난중일기)

4월 21일 여산 관아 노비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이순신 장군은 다음날 삼례역을 거쳐 전주로 이동하였다. 약 40km 거리의 꽤 긴 노정이다.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기 전인 1589년, 전라감사 휘하의 조방장과 정읍현감을 지내며 전북과 인연을 맺었었다. 따라서 삼례역을 거쳐 전주로 가는 ‘통영별로’나 정읍으로 가는 ‘해남로’의 길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과 전북 익산시 여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쟁목고개에서 전북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 첫발을 내딛는다. 고개를 내려서면 ‘호남의 첫고을 월곡마을’이라는 입석과 여산중고교를 차례로 만나고, 여산 동헌이 있는 여산면 소재지 쪽으로 향한다.

 

남원사. 지리산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혜소스님이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에 남원부사를 지낸 윤안성에 의해 중창되었다는 내력이 전해진다.
남원사. 지리산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혜소스님이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에 남원부사를 지낸 윤안성에 의해 중창되었다는 내력이 전해진다.

여산파출소 앞에서 정면 150여m 지점의 왼쪽 길로 들어서서, 이 길의 끝에 이르러 오른쪽에 있는 삼정교 다리를 건넌다. 이제 길은 한동안 여산천과 논밭 사이로 난 뚝방길로 이어진다. 길 오른쪽에 있는 남원사라는 절집에는 ‘831년 진감(眞鑑)이 창건하였고, 1592년 남원부사로 부임하러 가던 윤공이 이곳에서 자는데, 꿈에 석불이 나타나 그 곳을 파보니 미륵불상이 나왔고, 이에 법당을 중창하고 절 이름을 남원사라 하였다.’라는 내력이 전해진다. 진감은 지리산 하동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혜소스님인 듯하고, 윤공은 임진왜란기에 남원부사로 있으면서 많은 전투에 참전하였던 윤안성 부사를 이르는 듯한데, 길의 시작에서 뜻밖에 지리산 자락의 옛 인물들을 만난다.

 

신막마을 함석공장
신막마을 함석공장

뚝방길을 걸어 남산마을 앞에 이르면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고, 1번국도 옆의 신리교차로에서 가람로를 따라 신리로 향한다. 천호성지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일 즈음,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풍경을 지닌 신막마을을 지난다. 신막마을은 ‘새로 생긴 술집’, 즉 신주막(新酒幕)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한때 번성하였을 함석지붕을 이고 있는 공장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허물어지기 직전의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1번국도의 799번 지방도 이정표가 보일 즈음 도로 이름은 호반로로 바뀌고, 국도 건너편으로는 원수저수지가 보인다. 백의종군로는 여산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799번 도로로 이어진다. 갓길이 없는 좁은 2차선 도로로 진행에 주의를 요한다. 춘향전에 나오는 숯고개(탄현)에 이르면 이제 왕궁면으로 들어선다. 양동마을 앞을 지나 전봇대가 일렬로 서있는 농로를 걸어 연정마을을 돌아 나오면, 이제 왕궁저수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본래 옛길은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되었다고 한다. 저수지 옆으로 산책로를 조성하여, 호반의 정취도 느낄 수 있도록 길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체육진흥회에서 제공한 트랙으로 호반로(799번 도로)를 따랐으나 매우 위험하였다.

익산시 왕궁면 익산보석테마공원 안에 있는 함벽정(涵碧亭, 전북유형문화재 127호)과 왕궁저수지. 함벽정은 1930년 왕궁저수지의 제방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이 고장의 부호였던 송병우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익산시 왕궁면 익산보석테마공원 안에 있는 함벽정(涵碧亭, 전북유형문화재 127호)과 왕궁저수지. 함벽정은 1930년 왕궁저수지의 제방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이 고장의 부호였던 송병우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왕궁저수지를 지나 보석테마관광지로 들어서서 왼쪽으로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왕북초등학교가 나온다. 오늘 답사 구간의 중간 쯤 되는 곳으로, 인근에는 왕궁저수지의 풍경을 잘 감상할 수 있는 함벽정이 있다. 799번 도로 아래 통로를 거쳐 송선마을을 지나는 사이, 왼쪽으로 호남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고속도로 아래 통로를 거쳐 통정교로 이어져야 할 길은 ‘완주테크노벨리’ 조성공사로 거대한 펜스가 길을 막고 있다. 백의종군로 리본과 트랙이 이끄는 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속도로와 나란히 걷는다. ‘익산분기점 1km’라는 고속도로의 낯익은 이정표 아래 통로를 지나면 마을 앞으로 이어지는 ‘통정길’과 만난다. 통정은 춘향전에도 나오는 ‘통시암(桶井통정,통샘)을 말한다. 통정삼거리에서는 이순신연구소의 고증과 트랙이 안내하는 대로 오른쪽 방향 ’우주로‘로 향한다. 이 길은 삼례읍에 이르기까지 익산시 왕궁면과 완주군 봉동읍의 경계를 이루며 이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우주로‘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우주로’는 예전 이곳이 우주현 지역임을 알리려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우주현은 삼국사기에도 나올 정도로 유례가 오래된 고을이었으나, 고려시대 때 전주에 병합되었다. 하지만 우주현을 이루던 우북면, 우동면, 우서면은 조선시대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에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우북), 완주군 봉동읍(우동), 삼례읍(우서)으로 관할 읍면의 이름이 바뀌었다. 이렇듯 옛길은 고스란히 옛 우주현의 3개 면을 이으며 나있고, 21세기의 순례자도 호반로, 통정로, 우주로라는 이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답사 종착지인 삼례역. 옛 삼례역 터에는 삼례동부교회가 들어서 있다.
답사 종착지인 삼례역. 옛 삼례역 터에는 삼례동부교회가 들어서 있다.

통정삼거리를 출발해 산림항공본부 익산관리소와 왕궁육교를 차례로 통과하여 삼례로 들어선다. 백의종군로는 효행로(직진하는 길)를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좁은 길로 이어지며, 삼례나들목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우주로와 헤어지고 역참로를 걷게 된다. 삼례중앙초등학교 옆을 지나 조선시대 주요 역참의 하나인 삼례역이 있었던 삼례동부교회로 향한다. 이순신 장군은 삼례역 근무자(長吏장리)의 집에 들렀다고 하는데, 아마도 점심을 해결하려한 듯하다. 삼례역은 1892년 10월 27일과 1893년 2월 10일 두 차례에 걸쳐 동학교도들이 교조 최제우의 명예회복과 동학 탄압 금지를 요구한 집회가 열린 곳인데, 이는 전라도는 물론 충청도와도 잘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 동학교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회를 지나 동학로를 만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완주우체국으로 향하고, 삼례시장 옆의 ‘삼례역로’를 걸어 종착지인 삼례역에서 답사를 마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용섭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조용섭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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