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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할매 작가 전성시대

글로, 그림으로 과감하게 다시 태어난 기록 세대를 만난다

책마을 해리 아짐들의 유쾌발랄한 밭매다 딴짓거리 작품전시와 수료식.
책마을해리 아짐들의 유쾌발랄한 밭매다 딴짓거리 작품전시와 수료식.

“오늘 띠풀이 파느라고 디질 번해라. 파모중 하니라고 디지는 중 알았는디, 다행 디지진 않았다. 나는 일하는디 경화가 와서 이야기 동무 햐줘서 힘든지 모르고 했다. 경화는 뒷짐지고 섰더라. 그래도 고맙다.”

책마을해리 마을학교 박점순 아짐의 일기다. 띠풀 파느라고, 파모종 하느라고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동네 아짐이 와서 말동무 해줘서 힘든 줄 모르고 했다는 이야기. 그 아짐이 도와주지 않고 뒷짐지고 서 있어도 고마웠다는 이야기. 이 아짐의 나이는 여든셋이다.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명언이다. “보는 것이 인사여, 웃는 것이 인사고…….”

어려서는 여자라고 못 배우고, 젊어서는 아이들 키우느라, 살림하느라, 농사짓느라 바쁘게 살다가 이제 나이 들어 살 만해지니 안 아픈 곳 없이 이쪽저쪽 다 고장 나 끽끽댄다. 그래도 날 밝으면 호미 하나 들고 밭으로 들로 나선다. 그렇게 평생 일만 하다 살아온 우리 아짐들이 글로, 그림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글도둑 그림도둑질에 밤을 새며 날을 새며

 

책마을해리 김선순 아짐이 자신의 그림책 여든, 꽃 원화전을 둘러보고 있다.
책마을해리 김선순 아짐이 자신의 그림책 여든, 꽃 원화전을 둘러보고 있다.

책마을해리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생선 ‘대굴빡’만 주시던 시어머니 때문에 생선머리에 정내미 떨어진 유암 아짐은 당신의 며느리에겐 머리는 다 버리고 몸통만 구워주신다. 혼자 일하다 들어오면 수고했다 말해주는 영감의 빈자리가 그리워 그 애절한 마음을 글로 옮기는 점순 아짐. 마을학교 6년차, 아짐들과 함께한 시간 책마을 아짐들은 《마을책, 오늘은 학교 가는 날》, 《개념어 없이 잘 사는 법》, 《밭매다 딴짓거리》, 《여든 꽃》, 《마을, 숨은 이야기 찾기》 등 벌써 5권의 저자가 되었다. 김선순 어르신은 홀로 한 권의 그림책을 펴내기도 하셨다. 선순 아짐의 손은 늘 사인펜 자국투성이다. 당뇨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으신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고, 쓰고 그리는 날들이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즐겁다.

 

△미주 순회전시에 영화 개봉까지, 할매작가 전성시대

 

순천 할매들의 그림일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순천 할매들의 그림일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할매작가들의 이야기가 어디랄 것 없이 전국에서 들려오고 있다. 순천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하는 책이 화제다. 지역출판사인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에서 펴낸 이 책은 국민의 가슴을 울리며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해리처럼 시골시골 할매들과 사는 곳은 달라도 마음은 한결같다. 순천이면 해리에 비하면 대도시, 그 대도시에 살아도 할매들의 삶은 매한가지다. 노동에서 소외되고, 관계 바깥으로 밀려나고,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으니, 글이든 그림이든 스스로 주인이 되어본 일이 없다. 그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2016년부터 순천시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과정을 마친 어르신들이 그림작가와 함께 콜라보로 책을 펴냈다. 이분들의 이야기는 동네책방과 전국 도서관 순회전시에 이어 미국 필라델피아 등 3개 도시 순회전을 열고 있다. 미주 순회전시가 끝나면 파리에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니,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할매들의 활약이 반갑다.

경북 칠곡은 또 새로운 양상이다. 칠곡 할매들은 2006년부터 마을학당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극도 하며 살고 있다. 왜관읍 매봉서당, 북삼읍 해바라기학교, 기산면 한솔배움터 등 젊어 못 배운 한을 한없이 풀고 계시다. 이 할매들의 이야기는 <칠곡가시나들> 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상영되고 있다.

“배 불러 죽겠고/ 배 고파도 죽게따/ 더버 죽겠고/ 추버도 죽겠다/ 조아 죽겠고/ 미버도 죽겠다/ 쓰고보이 우서버 죽겠다”

<내 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 에 나오는 안윤선 아짐의 삶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 눈으로 읽으면 이해가 쉽지 않다. 우리는 늘 정확한 표기에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술을 열고 우리 신체로 읽으면 달라진다. 이렇게 쏙쏙 귀에 박힐 수가 없다. 평생을 문자가 아닌 말의 세계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할매들의 언어는, 눈으로 읽어서는 어렵다. 입으로 읽고 귀로 읽어야한다, 말로 읽어야한다.

 

△입으로, 귀로 우리 신체의 감각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히는

 

곡성 길작은도서관 할매들의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
곡성 길작은도서관 할매들의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

할매들의 말로 쓴 언어는 꾸밈이 없다. 그 안에 의미 맥락을 개켜 넣는 한자투성이 개념어도 없다. 그러니 말 자체로 충분하다. 조금 더 나가보면 글 너머 세계도 있다. 글이라는 형식을 깨트리고 나면, 할매들이 평생을 별러온 이야기 세계는 그림으로, 바느질로, 꼬무락 진흙 조형으로도 번진다. 훨씬 더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현한다.

하동할매들은 문화예술협동조합 <구름마> 와 만나 삶의 후반부를 글꽃 그림열매로 채우고 있다. 벌써 《대금이들에 핀 애절한 사랑》 같은 여러 권 책을 냈다. 하동 가까운 곡성에서도 할매작가들의 전성시대를 알린다. 작은도서관에서다. 입면 서봉리 길작은도서관 식구들의 헌신으로다. 이 도서관 입구 벽에 벽을 가득 채우는 나무를 그리고 그 나무 가지가지에 헌 고무신을 주렁주렁 달았으니, 주인장 김선자 관장 부부는 헌신으로 사는 분들이 맞다. 이 곡성 할매들은 시인이다. 한글교실을 시작하고 우연히 쓰기 시작한 글이 시가 되고, 마음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그야말로 ‘그대로 시’를 써내는 할매시인들이 되었다. 시들이 모여 《시집살이 詩집살이》로 출판이 되고, 다큐로 모아, <시인할매> 영롸로 개봉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시인할매 전성시대 극장판이 되었다.

 

△전국 내로라하는 할매작가들을 만나자, 고창한국지역도서전

전국 할매작가들의 활약상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오는 5월 9일부터 12일까지 책마을해리에서 열리는 2019고창한국지역도서전에서 <할매작가 전성시대> 라는 제목으로 전시와 함께 작가와의 만남을 갖는다. 5월 11일 토요일 오후 1시, 솔직하고 대담한 우리 할매작가들을 만나러 책마을해리로 나들이 시간을 내어보시기 바란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어린이부터 할매들까지 스스로 기록자가 되는 통로, 지역출판인들의 책과 문화, 출판한마당이다. 한지만들기, 활자체험, 책만들기, 서평쓰기, 저자와 만남, 지역과 출판, 문화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전시와 심포지움, 낭독회, 음악공연, 영화읽기, 투어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이영남 버들눈도서관 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영남 버들눈도서관장
이영남 버들눈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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