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휴가가 그다지 반갑지 않을 때가 있었다. 사무실을 벗어나 집에 오면 마음이야 날아갈 것 같지만 집이 사무실보다 더 덥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버티려니 너무 힘들어서 더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생각해낸 것이 다방이었다. 다방에서 차 한 잔 시키면 한나절은 거뜬히 보낼 수 있었으니까.
전주 경원동에 있는 바다다방으로 갔다. 이름만큼이나 크고 넓어서 들어서기만 해도 속이 확 트이고 시원했다. 수족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 한 잔을 시켰다. 감미로운 음악에 귀를 열어놓고 커다란 수족관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귀여운 금붕어들과 눈을 맞추며 마음을 내어주면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었다. 지금은 다른 건물에 밀려 흔적도 없지만, 오늘 갑자기 그 옛날이 그리워진다.
차의 원산지는 중국이라지만, 우리 조상은 삼국시대 선덕여왕 때 이미 차를 마셨다고 한다. 오늘날 물 다음으로 마시는 음료가 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식사하러 가자는 말보다 차 한 잔 하자는 말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직장에서도 직원들이 커피타임을 갖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면 분위기도 좋고 직원간의 유대가 더욱 돈독해지는 것 같았다.
오래전 일이다. 시청에 갔다가 커피를 마셨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 그런데 그 커피 때문에 그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괴로웠던 기억이 어제 일 같다. 어떤 사람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해서 커피로 휴식하고 커피로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지금도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향만 즐긴다.
지금은 위장이 좋지 않아 웬만하면 약도 먹지 않고 음식이나 민간요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기에 식사도 외식보다는 집에서 거의 해 먹고 은행, 대추, 생강, 도라지 등 몇 가지 약초를 준비해놓고 수시로 끓여 마신다. 몸에 좋다는 약초 차 만들기도 좋아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 중에 당뇨가 있어서 해마다 뽕잎 차를 만들어 보내주기도 했다.
어제는 순창에 갈 일이 있어서 쑥을 조금 캐왔다. 마늘, 당근과 더불어 성인병을 예방하는 3대 식물로 알려진 쑥을 밭두둑이나 논두렁에서 캤을 때는 손이 가렵고 붓는 증상이 있었는데 산에서 캐서인지 아무렇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았더니 쑥차 만드는 방법이 여러 가지였다. 생 건조, 쪄서 건조, 쪄서 덖기, 그냥 덖기 등이 있는데 나는 아무래도 쪄서 덖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 방법을 택했다. 줄기와 쑥대는 제거하고 잎만 사용했다.
여러 번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다음 약간 건조한다. 그리고 찜 솥에 면포를 깔고 뚜껑을 덮고 찌다가 숨이 죽으면 꺼 낸다음 팬에 덖음질을 하여 치댄다. 덖다가 치대고 덖다가 치대기를 9번 하라고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끝냈다. 종일 쑥과 씨름했더니 집안이 온통 쑥향으로 가득했다. 다 만들어진 쑥을 컵에 조금 담아 뜨거운 물을 부었더니 아주 맑은 연초록빛이었다. 한 모금 삼키자 은은한 향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면서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쑥은 여러 가지 효능이 있지만, 특히 알칼리성 식품으로 장을 튼튼하게 해준다니 매일같이 꾸준히 마시면서 육신의 건강도 챙기고 여유로운 시간도 가져야겠다.
에센바흐는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아무리 바빠도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 한일신 수필가는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후 수필에 입문해 <대한문학> 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내 삶의 여정에서> 가 있다. 내> 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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