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1 14:35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재·학술
일반기사

익산 쌍릉 소왕릉에서 문자 없는 묘표석 2점 발견

석실 앞·봉분에서 모양새 다르고 문자도 새기지 않은 묘표석 2점 발견
소왕릉에서는 피장자 추정할 만한 단서 미확인
20일 발굴현장 공개·설명회 개최 예정

묘도 내 묘표석(비석형)
묘도 내 묘표석(비석형)

백제 무왕(재위 600∼641)에 얽힌 고대 설화 ‘서동요’의 주인공인 선화공주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는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소왕릉에서 문자를 새기지 않은 길이 1m가 넘는 묘표석(墓表石) 2점이 발견됐다.

백제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짐작되는 두 유물은 각각 석실 앞과 봉분에서 나타났고, 모양새는 전혀 달랐으며 묘표석에는 명문(銘文·금석에 새긴 글자)이 없었다.

하지만 무왕 무덤으로 알려진 대왕릉에서 인골이 담긴 상자가 나온 것과 달리 소왕릉에서는 피장자를 추정할 만한 단서가 확인되지 않았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익산시(시장 정헌율),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20일 오후 2시 국내에 전례가 없는 이번 무자비(無字碑) 형태의 묘표석 두 점 발견과 관련해 발굴현장 공개 및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왕릉급 고분에서 국내 최초로 이번에 발견된 두 종류의 묘표석은 석비(石碑)형과 석주(石柱)형이다.

석비형은 일반적인 비석과 유사한 형태로 석실 입구에서 약 1미터 떨어진 지점에 약간 비스듬하게 세워진 채로 발견됐다.

크기는 길이 125㎝, 너비 77㎝, 두께 13㎝이며, 석실을 향하고 있는 전면에는 매우 정교하게 가공되었고, 그 뒷면은 약간 볼록한 형태다.

석주형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봉토 내에서 뉘어진 상태로 발견되어 원래 위치인지는 불분명하다.

길이 110㎝, 너비 56㎝의 기둥모양으로 상부는 둥글게 가공되었고, 몸체는 둥근 사각형 형태다.

이들 두 묘표석의 가장 큰 특징은 문자가 없는 무자비 형태다는 것이다.

참고로 석주형 묘표석과 비슷한 예는 중국 만주 집안(集安) 지역의 태왕릉 부근에 있는 고구려 봉토석실분인 우산하(禹山下) 1080호의 봉토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발굴조사단은 이번에 소왕릉 규모와 축조 기법도 파악했다.

 

봉분 내 묘표석(석주형).
봉분 내 묘표석(석주형).

봉분은 지름 12m·높이 2.7m이며,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사질점토를 시루떡처럼 번갈아 쌓아 올린 판축기법을 사용했다.

이같은 기법은 지난해 조사한 대왕릉에서도 확인됐다.

구조는 백제 사비도읍기(538∼660)의 전형적인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으로, 석실 단면은 육각형이다.

석실 길이는 340㎝·폭 128㎝·높이 176㎝로, 대왕릉과 비교하면 길이·너비·높이가 모두 약 50㎝씩 짧다.

다만 측벽 2매, 바닥석 3매, 덮개돌 2매, 후벽 1매, 고임석 1매 구조 짜임새와 석재를 치밀하게 가공한 점은 대왕릉과 동일하며, 석실 중앙에 관대(棺臺·관을 얹어놓는 넓은 받침)를 둔 점도 같다.

관대는 길이 242㎝·폭 62㎝·높이 18㎝로 대왕릉보다 작다.

석실 천장 고임석에서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든 길이 68㎝·높이 45㎝인 도굴 구덩이가 나왔다.

고분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에 이르는 연도(羨道)는 짧은 편이며, 폐쇄석은 대왕릉처럼 두 겹으로 설치했다.

남쪽으로 뻗은 무덤길인 묘도(墓道·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체를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는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드러난 묘도 길이는 약 10m다.

연구소 최 소장은 “묘도는 흙을 쌓은 뒤 되파기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묘도부 끝부분에는 묘역을 표시하기 위해 다듬은 석재를 반원형으로 두른 듯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발굴조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끈 피장자 추정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대왕릉 조사에서는 관대 위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발견됐고, 사망 시점이 620∼659년이고 60대 남성의 뼈라는 분석 결과가 알려지면서 641년 세상을 떠난 무왕 무덤이라는 견해에 힘이 실렸다.

최 소장은 “소왕릉 주인이 선화공주인지,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영기에 등장하는 사택적덕 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익산 쌍릉은 거리 180m 사이에 두고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구성됐는데 대왕릉은 익산에 미륵사라는 거대한 사찰을 세운 무왕, 소왕릉은 무왕 비인 선화공주가 각각 묻혔다고 알려졌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