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십 대와 이십 대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알 수 없는 분노라 말하기엔 이미 많은 걸 알게 된 분노였고, 알아버린 분노라 말하기엔 시작조차 되지 못한 분노였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나? 이 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마주 보고 견뎌야 하나, 모르는 척 돌려보내야 하나? 잘 모르지만 잘 다스려야 하나, 아니면 어느 날 잘 터뜨려야 하나? 생각에 생각은 허공에 잽을 날리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지만, 매일 힘쓰는 팔에 근육이 붙듯 생각을 거듭할수록 내 내면엔 끝없는 방문이 열렸다.
중학교 1학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한밤중 부스스 일어나 어디에 홀린 듯 정신없이 써 내려가던 나는 알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기울어진 것들에 대해. 둘러싼 기울어진 것들이 가리키는 방향에 대해. 그 방향이 모여 이야기하는 정확한 말들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몰라도 된다는 마음보다 클 때 그것을 향하는 화살촉은 더 뾰족해지고 길어졌다. 곧 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화살은 날았다. 극렬한 불화의 기억을 지나, 한부모 가정이란 딱지 너머, IMF로 타오른 경제적 추락을 향해. 뜻하지 않게 가장이 된 가족에 의지하며 곤궁에 갇힌 집에 구사일생은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푹푹 빠지는 뻘판 뿐. 개인의 행동에서 부모 공동의 일로, 가족이란 공동체에서 다시 개인이란 개체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삶과 빚에 졌다. 함부로 대결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비겨보려 덤벼들 계제도 아니었다. 꾸역꾸역 살아 천천히 밀어내고 다시 쌓을 수밖에는.
그 속에서 우리는 파라솔 아래 부는 시원한 바람과 살갗에 닿던 파도의 물결, 훈기 돌던 바닥과 온화한 손짓을 잊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두려웠다. 가장 가깝고 친밀했던 공동체가 실패의 기억을 강렬하게 공유하는 집단이 되어 내면의 공포를 간직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불행했던 공동체의 기억을 강력한 공포로 새긴 내가 또다시 무엇 하나 나아지지 않은 꽉 찬 도시에 비슷한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는 것. 제도로 묶여야만 막막한 개인의 삶을 구출할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또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내가 나를 밀지 않으면 누가 나를 떠밀고, 떠밀린 내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마다 시집을 펼치며 솟은 마음을 가라앉혔던 건 분노한 열네 살의 내가 미리 지시한 방향이었을까. 내가 조금 더 자라, 시에 마음을 열게 된 이유는 누구나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 속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채게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시 속의 화자들은 공동체의 화목을 강요하지도, 계급과 서열을 나누지도, 남녀를 쪼개지도, 다수와 소수를 구분하지도, 기쁨과 슬픔을 남발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자유와 평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시가 내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윤리 같았다.
그것과 다르게, 이제 이미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돈이나 말 많은 이들이 돌아가며 하는 똑같은 조언은 내 머릿속에서 긍정도 부정도 낳지 못한다. 나는 그것에 더 이상 슬퍼하지도 분노하지 않는 나와 마주한다. 언제부턴가 무력감조차 무력화시킨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드넓은 거리, 성공과 실패라는 단단한 잣대, 희망과 절망이라는 거대한 언어 속 아직 나는 이 세계에 한 번도 적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더 뾰족하고 길어질 날들, 가리키는 곳은 이 태풍 속 어디쯤일까. 감히 질문해도 될까?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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