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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깨달음의 힘

1960년대 말 내소사에서의 해안 스님.
1960년대 말 내소사에서의 해안 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득도하여 전북지역에 선풍(禪風)을 일으켰던 해안(海眼) 스님의 경우를 보자.

1901년 부안 격포에서 태어난 그는 18세 되던 해 백양사에서 학인 신분으로 7일간의 용맹정진에 들어가게 된다. 조실의 학명 스님으로부터 ‘은산철벽(銀山鐵壁)’ 화두를 받았는데, 그 뜻은, 사람이 여행 중에 갑자기 뒤에서 맹수가 나를 잡아먹으려 달려오므로 피신을 하는데 왼편도 오른 편도 새파란 강이고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으며 앞에는 은산철벽이 가로 막고 있어서 뚫고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조실 스님을 만나 문답을 하는데, 화두를 뚫지 못해 진땀을 흘렸다. 나흘째 되던 날 역시 조실 스님으로부터 ‘은산철벽을 뚫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대답을 못해 하염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 조실 스님이 ‘저 방에 가서 걸레를 가져오라.’고 하여 숨통이 트이는 듯 얼른 걸레를 가져다 드리자, 묵묵히 계시더니 곧 ‘걸레를 도로 갖다 두라.’고 하신다. 그제야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걸레를 갖다 두고 막 앉는 찰나, 벽력같은 큰 소리로 ‘나가!’ 하시는 게 아닌가. 혼비백산하여 나가서 멍하니 서있으려니 방안에서 다시 ‘봉수야!(해안 스님 속명)’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고맙고 반가워 문고리를 잡아당기는데 이미 방문은 꼭 잠겨 있었다. 부끄럽고 분한 생각이 치밀어 한없이 서서 울다가 선방에 돌아가 용맹정진 끝에 드디어 화두를 뚫게 된다.

 

내소사 부도전에 세워진 해안범부지비.
내소사 부도전에 세워진 해안범부지비.

그때의 오도송이 이렇게 전한다. ‘목탁소리 종소리 죽비소리에/ 봉새가 은산철벽 밖으로 날았네/ 사람들이 나에게 기쁜 소식을 묻는다면/ 회승당 안에 만발 공양이라 하리라(鐸鳴鐘落又竹 鳳飛銀山鐵壁外 若人問我喜消息 會僧堂裡滿鉢供)’.

1974년 열반을 앞두고 세상과의 인연을 마무리 짓고자 제자들을 만났다. 특히 청산거사에게 당부하기를, ‘…죽은 뒤 사리는 찾지도 말고 비 같은 것은 세울 생각을 말아라.’고 하였다. 이에 제자들의 도리도 있으니 비는 세워질 것이라고 하자 “굳이 세우려거든 ‘범부해안지비(凡夫海眼之碑)’라고 쓰고, 뒷면에는 ‘생사어시 시무생사(生死於是 是無生死)’라고만 써라.”고 하였다. 제자 일지가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리자 ‘울지 마라. 모두가 이렇게 가고 이렇게 오는 것이다.’고 했다 한다.

깨달음은 착각이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허무하기 짝이 없는 삶을 위대하게, 태양처럼 빛나게 하는 힘을 준다. 생사를 넘어 은산철벽을 넘을 수 있는 힘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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