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당·관풍각, 전문가 자문 통해 필획 보강
글씨체 주인공 1792년 증건 당시 전라감사 정민시 거론
연신당 제작 예정…전라감영위 방향성 논의
‘전라감영 현판 글씨는 누가 썼을까?’
조선왕조 500년 간 전북과 전남, 제주를 관할했던 전라감영이 복원된 가운데 전라감영에 걸린 현판 글씨를 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전라감영은 1951년 6·25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졌다가 70여 년 만에 복원됐다. 주요 건축물로는 조선시대 관찰사 집무실이자 전라감영의 핵심 건물인 ‘선화당’과 관찰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 관찰사 휴식처인 ‘연신당’ 등이 있다.
현재 전라감영의 선화당과 관풍각에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옛 사진 자료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확대해 복원한 것이다. 흑백 사진으로 필획이 선명하지 않은 부분을 바로 잡았다. 이를 위해 김병기 전북대 교수와 이용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윤점용 한국서예협회 이사장이 자문을 맡았다.
전주시 등에 따르면 1884년 전라감영을 방문한 미국 임시 대리공사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찍은 선화당 사진 속 현판은 오른쪽으로 15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자문위원들은 이 사진의 촬영 방향 등을 고려해 정면에서 쓴 느낌이 들도록 필획을 일부 보강했다. 최대한 외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판각했다는 설명이다. 이 사진 속 선화당 글씨를 쓴 인물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1792년(정조 16) 선화당 중건 당시 전라감사인 정민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민시는 조선시대 정치가로 1773년(영조 49) 문과에 급제해 예조 판서·공조 판서 등을 역임했다.
또 관풍각 현판은 전주부의 역사를 담은 전주부사 속 사진 자료를 토대로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정면 사진이 남아있어 비교적 복원이 용이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연신당은 사진 자료 등이 현존하지 않아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은 상태다. 1688년(숙종 14) 연신당 창건 당시 전라감사가 이유였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이와 관련 전라감영 재창조위원회는 연신당 현판 제작과 관련한 방향성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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