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1 15:50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상) 보물로 지정된 봉덕리 금동신발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고창 봉덕리 1호분 금동신발 노출상태
고창 봉덕리 1호분 금동신발 노출상태

사적 제531호 고창 봉덕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이 30일간의 공고기간을 거쳐 4월 21일 보물 제 2124호로 지정되었다. 완주 갈동유적의 세형동검 거푸집에 뒤이어 봉덕리 마한분구묘 유적에 출토된 금동신발이 보물로 지정됨에 따라 전북지역의 마한 문화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금번 금동신발의 보물지정과 관련하여 필자는 2009년도 봉덕리 고분군 발굴 당시의 책임자로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을 무릅쓰고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단체장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발굴이었기에 지면을 빌어 당시 군수님과 담당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전경
고창 봉덕리 1호분 전경

사실 봉덕리 1호분의 몇 개월에 걸친 발굴조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까지도 매장주체부로 축조된 석실들이 대부분 도굴된 상태여서 출토유물 역시 대부분이 토기 파편뿐이었다. 그나마 수습된 중국제 청자의 작은 파편에서 조사단은 ‘학술적 위안’을 삼아야 했을 지경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발굴조사가 마무리될 무렵에 분구의 동남 모서리 근처에서 도굴의 피해를 당하지 않은 석실 1기가 발견되었다. 조사결과 이 석실은 수혈식으로 이미 확인되었던 횡혈식과는 다른 구조의 석실이었는데, 만일 이보다 규모가 월등한 횡혈식 석실이 도굴의 피해를 당하지 안했다면 얼마나 화려한 부장유물이 우리와 마주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안타까움을 넘어 고대사 복원의 진정한 사료를 무참히 짓밟아 버린 도굴의 만행에 분노마저 느끼게 했다.

마침내 석실 내부의 조사 일정을 정하고, 석실의 뚜껑돌을 들어올리기 전에 작은 틈새로 카메라로 촬영하여 내부를 살펴보니 부장된 유물들이 완전한 상태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피장자 발치쪽에서 한 켤레의 금동신발이 시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순간 우리 조사단에서 수습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문화재청에 긴급 지원 요청하여 3일에 걸친 작업 끝에 국내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금동신발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은제머리장식, 소호장식유공호 및 그릇받침, 장식대도, 청동제 탁잔, 화살통, 중국제 청자, 각종 토기류 등이 부장되어 있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